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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시멘트를 구워 먹는 인간? ‘육식의 종말’을 통해 본 육식의 불편함

 

유럽 신학자들에 의해 창조된 ‘인간중심’은 계몽주의 사상의 입지를 굳혔습니다. 그 중에서도 르네 데카르트는 자연을 기계로 간주하며 급진적인 사상을 전개했고, 당시의 지성인들은 데카르트의 통찰력에 손쉽게 설득당했습니다. 그렇기에 때로는 살아있는 기계들 즉, 자연의 동작을 알고 싶어한 과학자들은 야만적인 실험을 아무렇지 않게 벌이기도 했습니다.

 

다소 잔인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개를 마구 때렸으며 고통을 느끼는 몸부림에 그저 웃음을 지을 뿐이었습니다. 매를 맞을 때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는 ‘개’라는 기계 속의 작은 부품인 스프링의 소음이라 생각하게 된 거죠. 그들은 가엾은 동물을 널빤지에 올려놓은 채 생체 해부를 실시하며 기계의 속을 연구하였습니다.

 

위의 과학자들의 무자비한 실험을 상상하면서 얼굴이 찡그려지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동물이라지만, 어떻게 저런 야만스러운 행동을 할 수 있는가 하면서요. 하지만, 이런 일들은 비단 사람들의 사상이 덜 깨어 있을 때의 일들이 아닙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일들이지요. 어느 채식주의자는 이렇게 이야기 하곤 합니다.

 

“학대 당하는 개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그렇게 열광하는 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똑똑히 보여주고 싶다”라고요.

 

 

 

육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있습니까?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예언한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 <엔트로피>에 이어 그의 또 다른 야심작인 <육식의 종말>에는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한지 그리고 인간임을 부끄럽게 만드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외식의 차원을 넘어 인간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육류 속에 담긴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가 숨어 있는데요. 이 책에서는 인간과 소의 관계에 대해 흥미롭게 풀어쓰고 있습니다. 다만 그 흥미로움 속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을 쉽게 떨쳐낼 수가 없더군요.

 

육식의 폐해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먹는 소와 돼지는 체중을 늘리기 위해서 입에 호스를 물려 끝없이 물을 섭취하도록 하고, 화학성 사료를 먹는 것은 물론 심지어 사료에 시멘트까지 섞어서 먹이는 것은 대부분의 농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비위생적이고 야만적인 방법으로 도축된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기도 하죠.

 

 

 

책 <육식의 종말>은 이런 육식의 현실을 고발하는 그런 책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소를 중심으로 덤덤하게 소와 인류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죠. 신으로 그려지던 소가 어떻게 인간에게 정복당하게 되었는지 역사적 근거와 다양한 사료들을 들어 설득력 있게 들려주는데요. ‘육식은 이래서 안 좋으니 먹지마!’가 아닌 ‘고기를 먹는 건 먹는 거지만 혹시 이런 사실은 알아?’ 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

 

우리가 소비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쇠고기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 식탁에 올랐고, 쇠고기가 과연 환경, 문화, 사회,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분석합니다. 무엇보다 소와 인류의 관계에 대하여 흥미롭게 풀어 쓰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진지해도 너무 진지하다 싶을 정도로 소와 육식에 대한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인디언들의 생존권, 자연환경과 맞바꾼 축산업의 발전

 

힌두교를 제외한 모든 문화권에서 즐겨 먹는 쇠고기는 우리 인류의 단백질 공급 사다리의 최정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과거 특권층만 먹던 쇠고기는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과 미국 서부의 목초지 개간을 통해서 엄청난 규모의 축산업의 시작으로 대중화 되었고, 버팔로와 인디언들은 이로 인해 삶의 기반을 잃어 미국 정부의 묵인 하에 발전은 지속되면서 결국 ‘멸종’해버렸죠.

 

이렇게 점차 발전하는 쇠고기 산업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굶주리는 인구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전세계 곡물 생산량의 1/3이 사료로 쓰이면서 누군가는 식량을 잃을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대량생산을 통한 ‘싸고 좋은 고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달콤한 말로 축산업은 생명의 존엄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사육과 도축 시스템으로 이루어지면서 인디언들의 생존권을 빼앗고 자연환경의 변화까지 주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인류 모두에게 위협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우리는 끝없이 육류를 소비해나갑니다. 육류 소비는 이런 축산업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을 책에서는 알려주고 있습니다.

 

 

 

육식은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온갖 쓰레기들이 넘쳐나는 쓰레기통 속에서 꺼낸 고기를 대충 씻어 익힌 후 먹는 걸 알면서도 맛있음에 만족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육식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식습관이며 그것을 금지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권을 가로막는 용서받지 못할 일일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런 육식에 대한 의존을 어느 정도 우리는 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제러미 리프킨 역시 책을 통해 채식을 하자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육류 공급 시스템을 바꾸고, 되도록이면 육식을 줄여 인간과 동물 그리고 환경이 함께 살아가는 지구를 만들자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죠.

 

저 역시도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후 ‘아무 생각 없이 고기를 먹을 것인가?’라는 작가의 물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쇠고기 산업 전체가 환경을 위협하고, 화학약품이 섞인 사료를 먹은 소가 식탁에 올라오고, 태어난 후 처음으로 햇빛을 보는 순간이 도축장에 끌려갈 때라는 공장 시스템 속의 소들의 모습을 이젠 소비자인 우리가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자신과 환경을 위해 이제 육식을 조금 줄여야만 하는 시대임은 분명합니다.

 

 

 

책에서는 주로 미국의 사례를 들어 이야기 했기에 자칫 우리나라의 축산 시스템도 그와 똑같을 거라 오해할지 모릅니다.(어쩌면 미국의 시스템과 별반 차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수십만 마리의 소 중 단 몇 마리만을 검사한 후 이상이 없으면 나머지 소들 모두 먹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는 미국의 현 시스템에서 과연 우리가 안전한 육류 소비를 한다고 할 수 있을까요?

 

도축장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다리가 부러지면서까지 버티는 소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본 기억이 있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영상으로 그때 소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어린 나이였지만 ‘저 동물들을 잡아 먹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하며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던 기억이 있어요. 책 <육식의 종말>을 읽게 되면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한번은 해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MBC 스페셜 고기랩소디 방송 화면.>

 

육식의 종말이 찾아올 수는 없겠지만, 지금의 비정한 육식 세계를 초월해 인류와 환경을 원상태로 되돌리고자 하는 제레미 리프킨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육식의 종말’이 아닌 ‘육식을 넘어서’라는 책의 원제가 훨씬 더 책의 내용을 쉽게 설명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