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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BLOG, SNS

아이폰 페이스타임과 페이스북홈, 인간을 희망하는 IT?



최근 IT 업계에서 내놓는 광고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기술보다 ‘사람’을 앞세운다는 점이죠. IT란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입니다. 누구를 위한 ‘정보’인가 하면, 역시나 우리 사람들이죠. 그런 면에서 IT 업체들이 앞다퉈 사람을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진짜 놀라운 건, 아니, 놀라야 하는 건, 사람이 강조됨으로써 사람이 배제되는 듯한 상황입니다. 지금은 이른바 스마트 시대입니다. IT 기기 없이 살아내기가 매우 곤란한 세상이죠. 비즈니스, 여가(독서·관광·쇼핑), 인간관계 등 일상생활의 거의 전 영역에 IT가 거미줄(WEB)을 쳐놓고 있습니다. IT와 사람의 간격은 ‘밀접’의 단계를 이미 넘어 ‘밀착’에까지 와 있는 겁니다. 기계를 만져서(touch) 작동시켜야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뒤집어 말하면, IT 기기들은 사람들이 제 몸을 만져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지 주머니 속에서, 재킷 주머니 속에서, 브리프케이스 안에서, 데스크 위에서, ... 그리고 우리는 기어이 그것들을 만져주죠. 손 닿을 때마다 부르르 떠는 스마트폰의 햅틱(haptics) 진동은, 때때로 전희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이 조그맣고 예쁜 IT 기기의 유혹은 참으로 압도적입니다. 


 

▲ 감성 마케팅 사례라 할 수 있는 국내 모 스마트폰 광고 / 이미지 출처: 광고 화면 캡처


앞 문단에서 ‘사람이 강조됨으로써 사람이 배제되는 듯한 상황’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는데요. 이 너스레의 설득력 제고를 위해, 슬로베니아의 사회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 선생님을 비대보겠습니다. 지젝 쌤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욕망의 대상에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가면, 에로틱한 매혹은 맨살의 실재에 대한 혐오감으로 바뀌는 것이다.”(『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중) 밀접을 넘어 밀착의 거리로 좁혀진 IT와 사람의 관계에서도 모종의 ‘혐오감’이 스멀스멀 생겨나는 듯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마케팅이 먹히는 이유도 그런 혐오감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IT 업체가 각종 커머셜을 통해 사람을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소비자들의 일상 속으로 자사의 제품들을 ‘밀착’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회사 제품 없으면 너희는 하루도 못 살 걸?” 조롱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얼굴을 바라보는 시간, FaceTime


아래 영상은 애플이 2010년에 론칭한 아이폰4 페이스타임(FaceTime) 광고입니다. 페이스타임은 아이폰 사용자들끼리 화상 통화를 하게 해주는 기능입니다. 광고 영상에서 직접적으로 페이스타임 기능을 위시하는 대목은 없습니다. 오로지 사람들이 등장하죠. 손녀의 졸업을 ‘페이스타임’으로 축하해주는 조부모, ‘페이스타임’으로 수화를 나누는 남녀의 모습, 파견 나간 군인이 ‘페이스타임’으로 임신한 아내의 산부인과 검진을 확인하는 장면 등등. 애플은 1984년 매킨토시 광고(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내용을 차용하여 PC 산업에 일대 혁명을 일으키겠다는 메시지를 전달. 영화감독 리들리 스콧이 연출)와 1997년 저 유명한 ‘Think Different’ 캠페인을 통해 감성 마케팅 본좌에 오른 바 있습니다. 


 

▲ 애플 아이폰4 페이스타임 광고 


2010년의 페이스타임 광고 또한 애플 특유의 감성 마케팅의 한 편이죠. 하지만 이성적으로 보자면, 대단히 껄끄러운 마케팅 전략이기도 합니다. 만약 페이스타임 기능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아니, 아예 아이폰 유저가 아니라면, 광고 속 소소한 행복들을 느끼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입니다. 또한, 굳이 페이스타임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얻을 수 있었던 인간적인 경험들이, 페이스타임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 삶에서 하나씩 제거되어가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광고 속 군인을 예로 들어볼까요? 페이스타임 기능이 없었다면, 그 군인은 아내의 산부인과 검진에 동행하기 위해 휴가를 신청했을지도 모르죠. 만약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아내를 보고 싶지만 보지 못하는 답답함에서 기인한 간절함과 그리움이 배가되었을 겁니다. 아내와 남편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질수록 심적 거리는 가까워지는 이치랄까요. 


 

▲ 페이스타임 기능을 이용해 남편에게 태아 초음파 영상을 보여주는 아내 / 이미지 출처: 광고 영상 캡처



'관계 맺기'라는 허세, Facebook Home


얼마 전 페이스북이 야심 차게 내놓은 ‘홈’ 기능 역시, 표면으로는 사람과 감성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휴대폰(안드로이드폰) 메인 화면 자체를 페이스북화시켜서, 언제 어디서든 휴대폰만 터치하면 페이스북 친구들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콘셉트인데요. 광고에도 잘 드러납니다. 


 

▲ 페이스북 홈 광고


한눈에 봐도 ‘감성’ 냄새가 풀풀 나죠? 영상 전반에 깔리는 내레이션을 한번 들여다볼까요? 


우리는 어디를 가든 휴대폰을 들고 다닙니다. 

휴대폰은 매 순간 우리의 일상과 함께하죠. 

우리는 여유가 생기거나 호기심이 일 때 휴대폰을 찾습니다. 

그 어떤 이유보다도, 우리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를 위해 휴대폰을 사용합니다. 

당신이 휴대폰을 켜는 순간, 당신의 친구들이 어떤 것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당신의 최근 메시지, 통화 기록, 그리고 새로운 소식이 바로 바로 화면에 노출됩니다. 

당신이 (페이스북이 아닌) 어떤 앱을 사용하여 채팅을 하든, 

당신의 페이스북 친구들은 언제나 화면에 보입니다. 

홈(Home). 스마트폰 사용자를 위한 전혀 새로운 경험입니다. 


We carry our phones wherever we go. 

They're with us almost every second of the day. 

We reach for them when we have a free moment or we're curious. 

More than anything we use our phones to connect to the people we care about. 

From the moment you turn on your phone, you see what your friends are sharing. 

Your latest messages, calls and updates are right upfront. 

And you can keep chatting from any app, so no matter what you're doing, 

your friends are always right there with you. 

Home. A whole new experience for your phone.


담백한 문장으로 완성된 스크립트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메시지 전달을 통해 페이스북 홈 기능을 설명하고 있죠. 요지는, 우리가 휴대폰을 켜둔 이상, 좋든 싫든 페이스북 친구들과 연결(connect)된다는 겁니다. 손 안의 조그만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 곳곳의 친구들과 실시간으로 대화하고, 그들의 소식을 즉각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 이쯤 되면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구나.(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따위의 인사치레는 조만간 사라지게 되겠죠? 내 친구들에 대해 궁금해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페이스북 친구들이 저마다의 일상과 근황에 대해 올리는 게시물들이 다소 ‘허세 작렬’인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요. 아래는 얼마 전 게재된 한 온라인 뉴스의 일부입니다. 


지난해 말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황성욱·박재진 교수가 대학생 374명을 대상으로 ‘페이스북의 심리적 문제점’을 조사한 결과 ‘타인을 의식해 가식적이고 과장된 게시물을 올려야 된다는 압박감’이 3위였다. 또 ‘친구나 지인이 공개한 미화된 삶의 모습을 접하면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SNS상 가벼운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_ 국민일보 2013년 4월 9일자 (기사 읽기)


국내 사례이긴 하지만, 해외 페이스북 유저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본인이 노출하고 싶은 일상만 노출할 수 있다는 것. ‘행복’을 편집하고 디스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 이 두 가지가 페이스북의 마력일 텐데요. 페이스북 홈 기능을 이용한다면, 아마도 내 친구들의 온갖 ‘편집된 일상과 행복’이 실시간으로 보이겠죠. 이렇게 되면, 관계 맺기의 방식이 완전히 뒤바뀔 것입니다. “너는 누구니?”라는 질문을 하기도 전에 이미 “나는 (    )다”라는 답들이 즐비할 테니까요. 어디에? 페이스북 타임라인과 뉴스피드에. 이런 식의 관계 맺기가 보편화된다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단계가 거세되고, 섣부른 ‘판단’이 앞서게 되지 않을까요? 


 

▲ 진짜로 손잡게 해줄 것도 아니면서!(삐딱이의 괜한 심술..) / 이미지 출처: 광고 영상 캡처


이제 우리는 누군가가 그리울 때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럴 수 있는 방법들이 참 많아졌습니다. 앞서 예로 든 페이스타임과 페이스북 홈 기능처럼요. ‘그리움’이라는 인간 특유의 감정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력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인간을 희망하는 IT 덕분.. 아니, IT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이 삐딱선 타기에 동참하실 분 어디 안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