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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상인 하루하루

'지하철 복수극의 진실'

이번에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의 저의 경험을 한 번 나누어 볼까 합니다.
많은 관심은 사양하지 않는거 아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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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해도 엉뚱한 행동 하나, '지하철 복수극의 진실'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닌데 (다소 얌전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듯죠…^^;) 가끔씩 승부욕? 엉뚱함?
아무튼 그러한 종류의 성격이 발현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이럴때는 자신이 생각해도 유치하고, 황당하고,
피식 웃음이 나오게 되죠. 저 역시 그러한 상황이 있어 한 번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때는 작년 여름. 지겹도록 더운 날씨와 계속되는 열대야, 그리고 과중한 업무로 인해 일주일 정도는
거의 좀비처럼 회사를 다녔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살금살금 저를 피해서 옮겨가는 듯한 느낌을… ㅡ,.ㅡ;  

저는 지하철에서 맨 끝자리를 매우 좋아합니다. 팔을 걸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혹여나 사람이 많은 경우에는 재빨리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날도 지하철을 타자마자 맨 끝자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 때 마침 끝에 앉아계시던 분이 엉덩이를 뜰썩들썩 하시는 게 다음 역에서 내릴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래 저 앞에 잠시만 서 있으면 이 자리는 내 자리가 되는거야~’

기쁜 마음에 몸이 피곤하고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 자리 앞에 발을 붙였습니다.

   ‘후덜덜~~~’

마치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반이 다시 지나가는 것처럼 다음 역을 향해 가는 지하철은 더디기만 했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하며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순간, 지하철이 다음 역에 도착했고,
저의 예상은 그대로 맞아떨어져 자리에 앉아계시던 분이 급하게 지하철을 탈출 하셨습니다.

   ‘이제 이 자리는 내 자리야~~’

라며 의기양양하게 앉으려는 찰나, 아뿔싸 왜 몰랐을까요? 인기척, 살기…. 조금만 긴장했더라면…

그 자리를 앉으려는 찰나, 옆에 같이 서 있었던 (사실 같이 서있다는 것도 몰랐었습니다. 그 만큼 은밀한 행동을 보여주신 것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재빨리 제가 찜 해놓은 자리에 앉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시더군요.

저의 눈에서는 아마 거대한 광선이 나가고 있었을 듯….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지하철 한 가운데서 저의 억울함을 외치고 싶었습니다. 마치 박하사탕의 설경구 처럼요. 너무도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저의 유치함이, 엉뚱함이 서서히 기지개를 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내가 여기서 죽을 수는 없지. 같이 죽자구요 아주머니’

라며 아주 독한 마음이 제 가슴속에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주위를 돌려보았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복수의 수단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급해졌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언제 내릴지 기약할 수 없었거든요.
(당연한건가요? ^^;)

그런데 때마침 지하철 내부의 온도상승으로 에어컨이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서 있는 자리, 그러니까 제가 아까 전부터 찜~해놓은 자리는 지하철이 직격으로 강타하는 최고의 명당이었죠.

     ‘그래, 이거야~!’

홍해가 반으로 갈라졌을 때 보다, 월드컵에서 4강을 했을 때 보다 더 큰 환호가 마음 속에서 터져나왔습니다.
(홍해가 반으로 갈라진 건…. 못봤습니다. 아시면서..)

약간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자리 정렬을 다시 했습니다. 발을 깔짝깔짝 움직여 정확한 위치에 자리잡았습니다.
이래도 군대에서 맡았던 보직이 사격지휘병, 정확도 하나는 끝내주게 높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주 완벽하게 저의 자리를 빼앗아버린 아주머니를 향한 에어컨 바람을 막기 시작했습니다.

     ‘푸하하, 아주머니 나의 승리입니다.’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젖혔을 때..! 바로 그 때..! 이건 정말 하늘의 계시입니다.
지하철 선반에 놓여있던 신문 한 뭉텅이가 눈에 보였습니다. 저 신문이면 지금보다 더 높은 효율의 반격을 해낼 수 있을 듯 했습니다. 신문을 집고 양손을 힘껏 펼쳤습니다. 아주 완벽하게 에어컨이 막혔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승리한 것 입니다.

신문에 가려진 저의 입가에는 아주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물론 아주머니께서는 낭패한 표정을 짓고 계셨겠죠…ㅋ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아주 멋진(?), 스타일리쉬한(?) 행동이었는데 말이죠, 조금 엉뚱하고 유치하고, 소심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멋진 복수극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