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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신사의 품격 볼 시간에 동물의 왕국 보는 게 나은 이유

 

최근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SBS 주말 드라마 ‘신사의 품격’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그 기세가 동시간대 부동의 시청률 1위인 ‘개그콘서트’를 뛰어 넘을 기세라고 하지요? 주말을 보내고 온 직장인들의 월요일 주요 화제로 신사의 품격 내용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대세는 대세인가 봅니다.

신사의 품격 주요 내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40대 미혼 남성(그 중 한 명은 기혼)들, 그들을 둘러싼 삶과 연애가 주된 내용입니다. 아, 당연히 이 네 명은 상당히 잘 나가는 사람들이구요. 외모는 물론 재력면에서도 빵빵해 자기가 맘에 드는 사람과 연애도 하고, 괜찮으면 하룻밤 자기도 하고, 마치 한국판 ‘섹스 앤 더 시티’라고 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동안 드라마 상의 연애가 ‘순애보’적인 면을 강조했다면, 신사의 품격에서는 나이가 찰 대로 찼다는 점을 강조해 ‘프리한 연애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점이 나름 현실적이라고 해서 환영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엔딩을 향해 가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주인공 장동건과 김하늘의 순애보로 돌아가고 있기는 하지만요. 한국 드라마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죠.

 

 

어쩔 수 없는 드라마. 드라마를 통해 형성되는 비뚤어진 기준

하지만 아무리 현실을 반영했다고 하더라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일까요? 보다 보면 드라마라는 한계를 보여주는 이해가 가지 않는 설정도 많이 보입니다. ‘존재 자체가 비현실’인 장동건에 대해서는 굳이 말 안 하겠습니다.
 

 

                        <그가 말한 독신의 이유만은 현실적입니다. “내가 번 돈을 아내 혹은 아이와 나눠 쓰기 싫어서”>

 

신사의 품격은 황금시간대에 방영하는 주말 드라마인 만큼, 단순히 스토리가 재미있는 드라마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이면에서는 시청자를 상대로 한 치열한 마케팅이 벌어지고 있기도 한데요. 물론 드라마 상의 PPL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독 럭셔리함을 강조한 드라마이다 보니 상당히 고가의 물품들이 많이 나옵니다. 먼저 이들이 거주하는 곳은 고급 아파트나 주상복합, 타는 모든 차량은 죄다 벤츠, 그리고 자주 모이는 카페는 주인공 중 한 명이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망고식스, 선물을 주면 명품 손목시계, 그나마 여주인공 김하늘이 타고 다니는 준중형 승용차가 가장 현실적인 SM3입니다. 최근 아우디와 BMW에 밀려 판매량이 줄고 있는 벤츠가, 신사의 품격 덕분에 판매량이 상승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상위 3%의 삶에 내 삶의 기준을 맞추는 현대인

철저한 마케팅을 염두에 둔 드라마 배경 소품들 때문에 시청자들의 눈은 높아만 갑니다. 장동건으로 대표되는 40대 중년 훈남들로 인한 외모 기준은 물론 ‘저 나이대의 사람은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 관념. 차는 고급 외제차, 집은 최소한 주상복합, 어쩌다 술 한잔 마셔도 양주 아니면 와인. 기름값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 전천후 기동력 등.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경제력이 우선이 되고, 본인 능력 여하에 관계 없이 그 기준은 더욱 더 상향되는 것입니다. 
 

 

 

                                 <나도 잠재력이 뛰어난 내 친구 알고 있는데 다만 머리숱이 적고 배가 좀 나왔어.>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말이 있듯이 본인의 현실은 그닥 안녕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성의 경우에는 본인의 능력으로 무엇인가 이뤄보려는 마음보다는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처럼 자신의 환경을 순식간에 바꿔 줄 ‘백마 탄 왕자’를 꿈꿔 보기도 합니다. 여성의 예를 들어 미안하지만 주로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들이 이런 능력 있는 본부장 + 신데렐라 여주인공 구도가 대부분이라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현실에서는 좀처럼 없죠. 드라마에 나오는 상위 3%의 기준(외모든 경제력이든)에 맞추다 보니 현실에서는 좀처럼 본인을 만족시켜줄 상대를 찾기는 힘이 듭니다.

 

 

드라마는 드라마, 현실은 현실로 직시해주길

 

물론 결혼 연령이 늦춰지고, 30대 중반에 결혼하는 것이 기본이 된 시대이기 때문에 신사의 품격에 나오는 럭셔리 중년들의 모습도 현실에서 볼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내 주위에서 보기는 힘들 겁니다. 그들은 아마 그런 잘난 사람들끼리 노는 상위 클래스에서 따로 놀 테니까요. ‘드라마가 사람 망친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은 아닐 겁니다. 드라마 주인공의 삶에 내 현실의 삶을 대입시키고, 그들의 재력과 능력을 내가 만날 사람의 재력과 능력에 대입시키는 우를 많은 사람들이 범하고 있기에 그런 말이 나온 것이겠지요.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영악하고 현실적인데 기껏 드라마 따위에 세뇌 당할 것 같냐?’는 말도 있겠습니다마는.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그런 드라마를 만드는 작가는 영악한 현대인의 머리 꼭대기에 있다는 사실도 아셔야지요. 현대인의 습성, 관심사, 취향 등을 종합해 그에 앞선 욕망을 드라마로 보여주는 사람이 오늘날의 드라마 작가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에 나온 명품을 카드로 지르고 나서, 할부금 갚느라 허덕이는 거죠.
 

 

 

                                          <드라마 작가는 여러분 머리 꼭대기에 있다는 점을 명심해 주세요.>

 

차라리 저는 이런 신사의 품격 같은 드라마보다는 동물의 왕국을 시청할 것을 추천합니다. 현실에 없는 판타지에 빠져 있는 것보다, 대기업 마케팅에 놀아나 카드를 긁는 것보다 훨씬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적어도 동물의 왕국에는 소비를 조장하거나 인간의 가치 기준을 경제력으로 매기는 저속함이 아닌, 자연 그대로 존재하고 그 자체로 존중 받을 수 있는 생명에 대해 보여주니까요. 
 

                               <요즘 동물의 왕국은 BBC나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만들어 완성도도 높습니다.>

 

나치 독일 제3제국의 선전상이었던 요제프 괴벨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진실을 알려주는 것보다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거짓을 들려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아픈 진실보다는 달콤한 거짓말이 당장에는 많은 위로를 주겠지요. 그렇다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욕망하고, 그것이 충족 안 돼서 괴로워하는 것 보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장동건이나 김하늘 같은 연예인이 아닌 이상에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