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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상인 하루하루

우도에는 마를린 먼로가 살아요~

우도에는 마를린 먼로가 살아요~



이번 여름 휴가는 어디로 다녀오셨나요? 전 사람 북적이는 게 싫어서 일찍 7월에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제주도로 말이죠. 여행을 하면 항상 기다려지는 게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인연들인데요. 이번 휴가에는 더욱 특별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우연히 들른 우도, 우연히 들어간 카페에서 만난 마를린 먼로를 사랑하는 더벅머리 소년이 우도를 더 특별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의 첫 모습은 카페 앞에서 의자에 니스칠을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저 사람 좀 포스있는데?!'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오픈하는가 하고 말을 걸었더니 가게 문을 연지는 1년 정도. 지금은 수리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하던 일에 열중. 


"왜 가게 이름이 마를린 먼로예요?"

"그냥 좋아하니까요."


카페 입구를 살짝  둘러보니 참 어리석은 질문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카페의 입구에는 마를린 먼로의 대형 브로마이드가 빼곡히 벽에 붙여 있었습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아주 오래 전에 나온 포스터 속 마를린 먼로가 새삼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이 사람 정말 마를린 먼로를 좋아하나 봅니다. 어디서 이런 걸 구했냐는 물음에 전부터 가지고 있던 가라고 하더군요. 시작부터 특이한 그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옆을 지키고 있는 건 둥실이였습니다. 둥실이는 태어난지 3개월 된 고양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작았습니다. 니스칠이 끝난 테이블과 의자 위를 뛰어다니는 둥실이. 다 마르지 않은 니스는 둥실이의 발에서 굳기 시작했고 발에서 니스를 떼어내기 위해서 한쪽 발을 들고 털어 대는 모습에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둥실이 때문에 어색한 분위기가 가셔서 다시 말을 걸었지요.


"영업하세요?"

"아니요. 오늘은 안합니다."

"그럼 구경 좀 할께요"



 



카페는 온통 하얀색이더군요. 테이블과 의자는 페인트 칠이 되어 있는 상태로 어지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발 디딜 자리를 찾아 가며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찬찬히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바다 앞에 이런 카페라니. 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 창문과 벽에는 방문객들이 남긴 포스트 잇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습니다. 새로운 곳을 발견했구나 생각한 것은 찰나, 여긴 생각보다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나중 일이지만 '우도 마를린 먼로'를 검색하니 참 많은 블로거들의 글을 볼 수 있더라구요. 사장님은 이 포스트 잇을 어찌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카페를 위해 남겨주신 메모를 버릴 수도 없고 창문으로 보이는 바다를 포기할 수도 없다며 천장에 붙일까 하는 생각도 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한참을 카페 밖에서 작업중이던 사장님이 카페 안으로 들어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전혀 먼저 말을 걸 것 같지 않게 생겼는데 먼저 용기를 내신 것 같더군요.


"커피 좋아해요? 커피 한잔 드릴까요?"

"그럼요. 사랑합니다.하하."


하루 종일 커피를 굶고 있던 때여서 그런지 커피 맛이 꽤나 괜찮더라구요. 게다가 공짜 커피니까.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그와 자연스럽게 얘길 이어나갔습니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커피를 팔 생각을 하셨어요?"

"다 사촌 형 덕분입니다."


사촌형은 우도 반대쪽에서 HAHAHOHO 1호점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를린 먼로는 HAHAHOHO 2호점인 셈인거죠.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을 때 사촌형이 내려와서 여기에 카페를 해보는게 어떻냐는 제안을 했고, 그 제안을 받아들인 거죠. 조용하고 차분한 그에게 잘 맞는 것 같답니다. 전적으로 카페를 할 수 있었던 건 사촌형이 많이 도와줘서라고 하더라구요. 부러웠습니다. 누가 카페 하나 할 자리가 있다고 와서 해보라고 하겠어요?! 


지금은 커피를 팔고 있는 그가 했던 일이 궁금해져서 무슨 일을 했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조선업에 종사를 했다고 합니다. 배를 만들던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외모였는데 의외의 대답에 놀랐습니다.


"일을 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난 조용히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하고 여유롭고 싶은데 이 일을 계속 해야 할까. 고민 끝에 결정을 한거죠. 쉽진 않았어요."


 '이 사람도?' 라고 생각 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보통 사람의 생각이었잖아요. 지금도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하고 살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죠. 특히 도시가 아닌 제주도에서. 섬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제주도를 꿈을 이루기 위한 곳으로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도 높은 연봉 대신에 주변과 어울어지는, 나를 위한 삶을 사는 부류에 속하게 것이지요.



 



해가 바다 아래로 내려 앉았습니다. 수다 떠는 사이에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니까 다급해졌는지 그는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커피값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의자에 니스칠하는 것을 도와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 했다 싶었을 때, 그는 글씨를 좀 쓰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냥 쓰면 되요. 제가 워낙 글씨를 못쓰거든요."


그래서 가게 앞에 놓을 나무 판에 'Brunch' 라고 글씨도 써주었습니다. 난 이제 커피 값을 다 했구나 생각했는데 실제로 팔고 있는 브런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녁 대신 브런치를 함께 먹게 되는 영광을 누리고 나서야 마를린 먼로를 빠져 나왔습니다. 숙소로 돌아가기 싫더군요. 더 알고 싶었으나 여기까지만. 다음에 다시 들렀을 땐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의 매력은 마음이 가는 대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시켜서 고향으로 돌아왔고, 카페의 주인이 된 것이죠. 그의 마지막 말이 참 인상적이었는데요, 우도 반대쪽에 꼭 마를린먼로 2호점을 낼 거라더군요. 이 좁은 섬, 우도에서 누가 커피를 그렇게 마실까 생각하겠지만 그런 건 상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제가 써 준 메뉴판는 다음 날 아침에 카페 근처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도 내 흔적을 남기고 가는구나' 하는 뿌듯함. 참 좋습니다. 우도가 참 좋습니다.



 



우도야, 마를린 먼로야, 내년에 다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