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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엉뚱상상 콘텐츠 기획자가 선정한, 잘 뽑은 제목 다섯 편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하는 입장에서 늘 고민하는 것이 ‘제목’입니다. 신동엽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라고 썼다지만, 마케팅 차원에서 보면, 일단 껍데기가 보기 좋아야 대중의 간택을 받는 것이 섭리이죠. 그래서 늘 제목이 고민입니다. 제목을 ‘뽑아낸다’고 표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고요. 


잘 뽑은 제목 하나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쫄깃한 제목은 오랜 시간 대중에게 화자되는데, 그럴수록 그 제목이 리드하는 콘텐츠 역시 장수하게 됩니다. 물론 제목만 번지르르하고 알멩이는 허술한 경우도 있습니다. 이른바 낚시성 제목들이죠. 아마도 이 ‘낚시’에 대한 고찰은, 모든 콘텐츠 기획자의 딜레마일 겁니다. ‘낚느냐 안 낚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진정성을 내세우자니 너무 평범하고, 파격으로 가자니 왠지 대중을 낚는 듯해 죄스럽고. 


이번 시간에는 엉뚱상상 콘텐츠 기획자가 선정한 ‘잘 뽑은 제목’ 다섯 편을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제목(껍데기), 콘텐츠(알멩이), 시의성(대중의 간택) 삼박자를 고루 갖춘 선례들을 살펴보는 시간이죠. 이를 통해 대중과의 소통의 거리를 좁히는 노하우를 배워보는 것입니다. 





 

<출처: 교보문고>


‘위로’와 ‘힐링’이 유행인 시대에 ‘독설’이라니요. 이런저런 ‘멘토’들이 여기저기 등장하고 있는 시대에 ‘언니’라니요. 그러나 <언니의 독설>은 떴습니다. 흔들리는 30대에게 온화한 위로 내지는 힐링의 멘토링을 해주는 대신, ‘너희들보다 먼저’ 30대를 살아본 언니로서 거침없는 독설을 쏘아주는 콘셉트. 제목에서부터 이미 이 책의 차별화 전략이 물씬 풍기죠. <언니의 독설>은 트렌드를 역류하여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인 김미경 씨는 여러 강연 무대에서, 고민 많은 청춘들의 언니이자 누나로서, 차진 독설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어찌 보면 참으로 평이한 제목입니다. 하지만 이 짧은 제목 안에 놀라운 마술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언어의 마술, 좀 더 자세히 말하면 ‘도치법의 마술’이죠. 원래의 문장은 ‘사랑해서 미안하다’였을 겁니다. 여기서 ‘사랑’과 ‘미안함’의 순서가 바뀌어 ‘미안하다, 사랑한다’가 된 것이죠. 게다가 ‘미안하다’ 뒤에 쉼표(,)까지 찍었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한 뒤,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뭉클한 장면을 상상하게 되죠. 이 드라마의 주인공 차무혁(소지섭 분)의 무뚝뚝하지만 진한 애정이 배어 있는 캐릭터를 잘 녹여낸 제목입니다. 





 

<출처: 교보문고>


오지탐험가이자 국제기관단체인으로 활동 중인 한비야 씨. ‘바람의 딸’이라는 근사한 수식어로 소개되곤 합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열성적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한비야 씨의 베스트셀러인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에도 그런 면모가 잘 묻어나는데요. 이 책의 제목은, 굳이 책장을 넘기지 않아도 이미 내용을 다 읽은 것처럼 느껴지도록 합니다. 제목 안에 저자의 메시지가 오롯이 응축되어 있죠. 삶의 모든 순간을 경계와 구분선 없이 대범하게 받아들일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국경을 넘어 진짜 소통을 이룰 것, 꿈과 목표를 향해 (여행이 아니라) 행군할 것. ‘지도 밖’과 ‘행군’이라는 단어의 조합이 이토록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는군요. 





 

<출처: 교보문고>


박후기 시인이 2006년 발표한 시집 제목입니다. 종이(펄프지)가 나무를 가공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은 우리 모두 어린 시절에 배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종이를 사용하면서 나무를 떠올리는 일은 극히 드물죠. 비단 종이뿐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사물들에 대해 그 기원을 생각해보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시인의 시각은 확실히 일반인들과는 다른 듯하네요. 종이가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고 표현했으니 말입니다. ‘유전자’라는 단어를 채택한 건, 나무가 생명이기 때문이겠죠? 사무실 책상 곳곳에 놓인 수많은 서류들, 대학교 강의실 한곳에 쌓인 교육 자료들, 이 모든 종이들이 한때는 땅밑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나무였다는 사실. 종이 앞에서 왠지 숙연해지네요. 





 

<출처: 네이버 영화>


봉준호 감독의 출세작 <살인의 추억>은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합니다. ‘살인’과 ‘추억’이라는 다소 어울리 않는 단어들을 붙여놓음으로써 낯설고 강렬한 인상을 자아냈기 때문이죠. 영화의 소재는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실제 일어났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입니다. 진범을 잡기 위해 그야말로 ‘개고생’을 했던 형사 박두만(송강호 분)이, 결국 범인 검거에 실패하고 평범한 정수기 외판원으로 늙어간다는 내용.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라는 포스터 카피가 말해주듯, 여전히 범인 검거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늙은 박두만에게,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안 좋은 추억’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이 같은 주인공의 내면이 <살인의 추억>이라는 제목에 함축되어 있죠. ‘잔인함’에 ‘감성’을 얹은 콘셉트라고 할까요. 낯설게 하기 기법의 좋은 교본입니다. 






콘텐츠 기획자가 선정한 ‘잘 뽑은 제목’ 베스트 5는 여기까지입니다. 위 다섯 편 말고도 뛰어난 제목들은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형편없는 낚시성 제목들도 상당하죠. 때로는 정면교사, 또 때로는 반면교사의 자세가 필요하겠죠? 석유를 시추하듯, 멋진 제목들을 뽑아내기 위한 노력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