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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SNL과 진짜사나이를 통해 본 ‘금기’에 대한 짧은 생각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스스로 꺼내기에는 불편한 것들. 삼감과 금함, 가림에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둬야 하고 꺼낼 때에는 그에 따른 무거운 책임이 따르지만, 어느 한 편에서는 지지의 박수를 받을 수도 있는 일. 우리가 흔히 금기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어느 곳에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기피나 회피가 일방적이지만, 간혹 금기를 깨면서 오는 카타르시스에 우리는 즐거워하기도 합니다. 이는 특히 미디어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특히, TV나 영화관은 나만의 공간에서 남몰래 누군가를 지켜보면서 관음에 대한 호소를 손쉽게 풀 수 있는 플랫폼이기에 타부(taboo)가 깨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짓는 미소와 박수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금기에 도전해가는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죠. 우리나라 방송법상 방송 3사에서는 다루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케이블에서는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기에 금기에 대한 도전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금기의 영역을 넘어서는 대한민국 유일무이 19금 프로그램 ‘SNL코리아’


늦은 토요일 밤 오랜만에 TV를 켰던 저는 채널을 돌리다 조금 조금씩만 봐오던 SNL코리아를 처음으로 끝까지 시청해 봤습니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아이돌도 꿈의 무대를 벗어나면 그저 술자리에서 음담패설을 즐기며 웃을 수 있는 남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신선함이 돋보이더라고요. 미국에서 인기리에 방송된 라이브쇼 SNL(Saturday Night Live)의 한국 버전으로, 알 것 다 아는 성인들을 위한 코미디로 방송 초기부터 매주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성인들을 위한 본격 코미디 쇼! tvN의 SNL코리아>


‘성’이라는 사적인 영역을 공적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시청자들은 ‘그래 공공 미디어에서 어디까지 가는지 한 번 지켜보자’ 하는 마음으로 채널을 고정 시키고 비판과 풍자 그리고 화장실 유머라고도 하는 저급한 성적 개그에 묘한 쾌감을 갖기 시작합니다. 남녀 모두 성에 있어서는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모두가 같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신동엽, 김슬기, 박재범, 유세윤 등의 SNL Crew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기까지 하더군요. 거기에 게스트로 등장하는 연예인들만 보더라도 이런 모습을 절대 보여줄 것 같지 않던 사람들까지 여지없이 치부를 드러내는 경우도 있어 SNL코리아만의 영향력을 느끼게 해줍니다.



<지난 9월 7일 방송에서 큰 활약(?)을 보인 유희열과 승리>


이번 회에서는 굴지의 아이돌 그룹 빅뱅의 ‘승리’가 등장해 여성을 탐하는 남성의 본능을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보여주면서 아이돌이 갖고 있는 ‘금기’를 깨기도 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 SNL코리아는 모두가 다 알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는 소소한 이야기마저 매회 보여주면서 남성 시청자들의 무한 공감을 이끌고 있는데요. 휴가 때 여자친구와 뜨거운 밤을 보내려 했지만 그렇게 많은 신촌의 모텔에 빈방이 없어서, 주변 친구에게 연락해 피시방비 3천원을 쥐어 주고 친구의 자취방을 3시간 빌렸다는 저의 군시절 후임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듯한 SNL코리아의 자취방 대실 서비스는 마치 술자리 유머를 그대로 옮긴 것과 같은 쾌감까지 느끼게 했습니다.



<”목 조르면 경찰서 가야죠~”>


웃음과 심의 사이에서 웃음을 택한 SNL코리아는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금기를 깨면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이 금기라는 것은 내가 깨면 안 되지만 누군가는 깨주길 바라는 오묘한 인간 이기심이 숨어 있는 개념입니다. SNL코리아는 이런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고요. 그래서일까요? SNL코리아를 보며 웃고 있는 저를 보면서 문득 놀라기도 합니다. 너는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추잡한 농담과 묘사 앞에서 맘껏 박수치며 웃어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수지야 뭐 입고 있니?”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기대하게 만든 유희열의 한 마디>


금기에 대한 도전이 인간의 숨은 본성이라면 남녀불문 타인 앞에서의 ‘내숭’ 역시 사회적 교류에서 필수적 요소이지만, 간혹 나는 본성보다 내숭을 우위에 세우고 사회생활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은 어떠세요? 금기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100% 그대로 말할 수 있을까요? 꼭 그것이 성과 관련한 즐거운 농담만이 아닌 경우에라도 말이에요.


금녀(禁女)의 영역을 드러낸 진짜사나이, 사회적 시선을 부수다


너무나도 유명한, 여자 앞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이야기가 있죠. 네, 잘 아시다시피 군대, 축구,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입니다. 세 가지 이야기 중 무려 두 개가 군대 이야기라는 점은, 그만큼 군대는 남자들에게 그들만의 세상, 자기들만의 리그인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군대는 폐쇄적인 공간인 만큼 말로만 전해지는 군대의 모습 때문에 다양한 오해와 불신이 쌓이기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군대의 참모습을 알린다는 국방부의 어이없고 재미없는 군대 홍보 영상만이 군대의 모습을 엿보는 전부였죠.



<이런 홍보 영상을 통해서만 우리는 군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미디어에서는 군대를 소재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우정의 무대’는 군대를 찾아가고 군인들이 나온다는 것 외에 군대의 실상을 볼 수는 없었죠. 그러던 중 최근 큰 화제 속에 종영 후 새로운 시즌을 준비중인 ‘푸른거탑’이라는 프로그램은 코믹 요소가 많이 섞이긴 했지만 어느 정도 군대의 모습을 대중에게 노출시키며 그동안 금기시 되어오던 군 관련 방송 프로그램의 한계를 뛰어 넘었습니다.





여기까지가 미디어에서 노출할 수 있는 군대의 전부라 생각했지만 이게 웬일 ‘진짜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작하면서 군대 내에서의 소소한 일상은 물론 훈련 장면까지 그대로 방송을 통해 노출시키고 있는 거였습니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 소재 중 하나인 군대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보여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들은 신선함을 느끼고 남성들에게는 추억을 선사하면서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럼 진짜사나이의 진짜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금기에 대한 도전 그리고 도전에 대한 쾌감을 첫 번째로 꼽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예비역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해봅니다. “다시 입대하라면 할래?” 아마 대부분의 예비역들에게 재입대란 악몽이며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멀쩡하게 군복무를 마친 연예인들이 다시 군대에 들어갑니다. 그것도 병영 체험이 아닌 진짜 군인으로 말이죠. 말로만 들어오던 재입대를 직접 목격한다는 처음의 컨셉은 그 자체만으로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군대의 소소한 일상은 물론 격렬한 훈련 현장도 그대로 보여주며 금기에 도전한 진짜사나이>


또한, 누구나 말하지만 절대 공감이란 없었던 군대 이야기. 황금 같았던 2년이라는 시간을 아무리 주구장창 이야기 해도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그렇게 금기와도 같았던 군대에서의 활약상(?)은 나만 간직한 추억으로 평생 갖고 있었어야 했는데, 이젠 여성들이 앞장 서서 군대 이야기를 소비하고, 앞에서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전처럼 못할 짓이 아니게 됐습니다! 진짜사나이의 인기는 말 못할 서러움 가득했던 예비역들에게 이렇게라도 지난 군생활에 대한 시간을 인정받는다는 보상심리가 어느 정도 더해졌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내가 PX 냉동음식이 맛있다 말한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지만…>


사격훈련과 군대리아를 비롯한 군대 식단, 경계근무, 훈련, PX 그리고 걸그룹에 정말 군인들이 그렇게 열광을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진짜사나이는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존에는 보지도 못했던 세세한 군대 생활의 모습까지… 하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니 이렇게 멋진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탄생했습니다. 진짜사나이를 보면서 금기는 가끔 고정관념이 만들어내고, 그걸 당연시 하는 생각 때문에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창의적 아이디어에 목말라하는 요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금기를 부수는 일은 어쩌면 위대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