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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본질을 직시하는 고집 센 리더, MLB 오클랜드 빌리 빈 단장



야구는 ‘1·2·3루를 거쳐 베이스(base)로 돌아와 득점하는’ 경기입니다. 이스볼(base ball)이죠. 점수를 내려면 일단 출루해야 합니다. 출루를 해야 베이스로 갈 수 있으니까요. 출루하는 방법에는 홈런, 안타, 볼넷 등이 있습니다. 출루가 본질적인 상위개념이라면, 홈런과 안타와 볼넷은 하위개념인 셈이죠. 


소위 ‘스타 플레이어’라 하면, 홈런과 안타를 잘 치는 타자이거나, 삼진아웃을 잘 잡아내는 투수를 일컫습니다. 쭉쭉 내뻗는 시원한 타구와 강속구로 관객들을 열광케 하는 주인공들이죠. 야구장의 티켓 파워가 이들에게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구단들은 스타 플레이어를 모셔가기 위한 고액연봉 드래프트 경쟁을 치르기도 합니다. 구단의 스카우터들 역시 바쁘죠. 미래의 스타 플레이어가 될 만한 루키들을 찾아 전국의 고교 및 대학 야구단을 물색하니까요. 


 

▲ 1·2·3루를 거쳐 베이스로 돌아와 득점하는 경기, 베이스볼




 


1997년 메이저리그(MLB)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팀의 단장을 맡게 된 빌리 빈은 거물급 스타 플레이어들을 경기에 내보내지 않거나 아예 다른 팀으로 방출해버리는 기행(?)을 일삼습니다. 얼마나 잘 치는지(타자의 타격감, 홈런 기록, 안타율 등), 얼마나 잘 던지는지(투수의 제구력, 투구폼, 방어율 등)를 완전히 무시한 팀 운영을 보여줬죠. 겉보기에는 그랬습니다. 야구계와 미디어로부터 폭격 수준의 비난 세례를 받으면서도 빌리 빈은 끝까지 자신의 기행을 고수했는데요. 당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메이저리그에서 무척 가난한 구단으로 연패 행진 중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빌리 빈의 기행은 구단 관계자들을 매우 언짢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빌리 빈 / 출처: The Guardian


빌리 빈이 선수를 뽑는 기준은 단 하나였습니다. '얼마나 잘 출루하는가', 출루율이었죠. 요컨대 그는 '1·2·3루로 출루하여 베이스로 돌아와야 하는' 야구 득점의 본질에 집중했던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는 구단 내 자신의 오른팔이기도 했던 애널리스트 폴 티포데스타와 함께 선수들의 신체 정보나 경기 기록들을 분석하여 수치적으로 통계화했죠. 그런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출루율이 가장 높은 선수들만을 가려 골랐습니다. 이른바 ‘스타성’이 없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선수들이 대부분이었죠. 그중에는 아마추어 리그 선수들도 상당수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의 연봉은 그야말로 헐값이었습니다. 스러져가는 왕년의 스타였던 30대 후반의 데이빗 저스티스, 팔꿈치 부상으로 선수 생명의 위기를 맞고 있던 스캇 해티버그가 대표적인 선수들이죠. 빌리 빈이 이 둘을 영입하겠다고 했을 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드래프트 관계자들은 대부분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스타 플레이어를 원했으니까요. 그러나 고집 센 단장 빌리 빈은 이렇게 일갈했다고 하죠. "우리는 지금 청바지 모델을 뽑는 게 아닙니다!" 플레이어의 스타성이 아닌 출루율을 중시한 그다운 말입니다. 


결국 빌리 빈의 기행과 고집은 통했습니다. 2002년 메이저리그 전체 연봉총액 순위 29위의 가난한 팀이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20연승을 일궈내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당해 103승을 기록하며 최다승 팀이 되었습니다. 


*포스트시즌: 메이저리그는 아메리칸 리그(AL)와 내셔널 리그(NL)로 나뉘어 경기가 진행됩니다. 이걸 포스트시즌이라 합니다. 포스트시즌에서 1위를 차지한 AL·NL 각 리그의 두 팀이 7전 4승제로 경합을 버리는 경기가 바로 월드시리즈입니다. 


수치와 통계를 활용하여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을 '머니볼 이론(Moneyball Theory)'이라 부릅니다. 빌리 빈은 이 머니볼 이론을 가장 극적으로 실현시킨 인물이죠. 그러나 빌리 빈으로부터 얻어야 할 레슨은 이런 경제 이론이 아니라, 현상의 '본질'을 직시하는 우직한 시각과 사고, 그리고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끌어나가는 고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엠블럼 / 출처: Martinez News-Gazette


 

▲ 구단 점퍼를 입은 빌리 빈 / 출처: MLB Reports


 

▲ 영화 <머니볼>에서 빌리 빈을 연기한 브래드 피트 / 출처: TLNT




 

 

'출구를 알려줄 문지기 따위는 결코 없다'라는 전제 하에, 기나긴 미로를 헤매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역시 '이 미로를 함께 헤매줄 누군가'일 겁니다. 그마저도 없다면, '나보다 먼저 이 미로를 헤매봤던, 그리고 끝내 출구를 찾아냈던 누군가'의 존재가 대안이 될 수 있겠죠. 그런 대안의 존재를 우리는 '아이돌(idol)'이라 부릅니다. 제게는 빌리 빈이 그런 아이돌입니다.


빌리 빈 단장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아직 우승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단장으로 있는 동안 우승을 해보는 것이 그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2013년 9월 10일자로 MLB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포스트시즌을 넘어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할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빌리 빈은 (다른 구단들의 거액 스카웃 제안이 있었음에도) 아직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남아 있습니다. 그 사실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된다는 걸 빌리 빈은 알까요. 


※ 포스트 최상단 타이틀 이미지 출처: SF G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