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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떨어지는 단풍의 아쉬움, 시인의 노래로 달래다

떨어지는 단풍의 아쉬움, 시인의 노래로 달래다



가을, 그리고 단풍. 땔래야 뗄 수 없는 하나의 모습으로 우리 곁을 찾아왔다가 그냥 그렇게 떠나갑니다. 단풍잎은 화사한 빨강에서 그윽한 갈색까지 나무마다 다른 색채의 아름다움에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죠. 낮의 길이가 짧아지고 밤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나무는 자신의 잎을 내려놓을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뿌리에서 가장 먼 곳의 잎부터 천천히 옷을 갈아입죠. 그렇게 하나둘 변하는 시간을 지나 길가의 많은 가로수들이 단풍으로 물들어갑니다. 이제 가을비가 내리고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면 남아 있던 그들은 하나둘 자리를 비우겠죠. 그렇게 단풍은 집니다.


떨어지는 단풍이 아쉬운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아쉬움은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다시 이 시간이 돌아와야 볼 수 있기에 감수성 예민한 시인들의 펜을 들게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겠죠? 하지만 시인들은 가을이 지나가는 소리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간을 글로 담아내며 지나가는 시간을 모두 아쉬워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펜을 들어 시를 남기고 사람들은 시를 읽으며 다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느끼죠. 가을이 깊어가는 오늘, 시를 만나보려 합니다.


< 가을, 단풍의 노래가 들리시나요? >



고은 시인이 이야기한 '순간의 꽃'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을 꼽으라고 하면 바로 고은 시인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시집인 <순간의 꽃>은 많은 사람이 읽고 다시 읽기를 거듭하죠. 카피라이터 박웅현 씨가 <책은 도끼다>라는 책에서 언급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 안에는 고은 시인의 세상을 보는 눈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놓치고 지나갈 수 있는 작은 순간이라는 시간을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듯이 들여다보고 있죠. 놓치기 쉬운 일상의 모든 것들을 이런 눈으로 본다면, 아마 우리 모두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세상에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이 많기 때문이죠. 


<순간의 꽃>에는 길게 쓴 시가 없습니다. 처음에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왜?'라는 의문이 드는 시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많은 사람이 '왜 고은 시인을 좋아할까?'하는 생각도 했었죠. 하지만 한 번 읽었던 시를 곱씹어서 한 구절 한 구절 다시 읽어보니 머리에 벼락을 맞는 듯한 느낌이 지나갔습니다. 어떻게 그 짧은 단어들로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지, 또 어떻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는지에 대한 감탄이 계속되었죠.


내려갈 때 보았네

올랄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린

천 개의 물방울


비가 괜히 온 게 아니었다


위의 시처럼 그냥 지나쳤으면 보지 못하는 것들을 고은 시인은 보고 그 순간을 적어두었습니다. 올라가는 동안 힘들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보지 못한 꽃을 내려오면서 여유가 생기자 발견을 하죠. 또 노를 젓고 있는 동안에는 노 젖는 일에 집중해서 물을 볼 여유가 없다가 노를 놓치고서야 주변에 시선이 가서 보이게 된 것입니다. 비가 온 후에 맺힌 물방울이 생명을 다한 죽은 나뭇가지에 매달려서 새로운 보석처럼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비가 괜히 온 게 아니었다'라고 표현했죠. 


고은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우리가 놓치고 지나치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만큼 여유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쉽게 본다는 말이 아닐까요?


< 순간의 꽃 / 출처: 교보문고>



김용택 시인의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앞의 고은 시인이 짧은 문체와 순간을 담아내는 사진 같은 표현으로 감탄을 만들어냈다면, 박용택 시인은 다른 매력으로 감탄을 자아냅니다. 주로 사라지는 것들과 곁에 남아 있어주면 하는 것들을 시에 담아내죠. 섬진강 강가의 자연과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는 넉넉한 그의 마음도 느껴집니다. 그의 시는 이야기처럼 이어지는 형식이 많은데, 잔잔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상상을 통해 그 장소에 가 있도록 하죠. 때론 자연에 대한 무책임적인 행동을 통해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신만의 언어로 일갈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그만큼 자연을 사랑하고 그 안에서 사람이 나고 자라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죠.


새들은 난다.

마음을 정한 데가 있는냐.

그곳에 마음을 다 써라.

편한 두 손, 멀리가는 눈길.

마른 풀잎 같은 몸. 바람이구나.

<새들은 아침에 난다 中>


번개가 천둥을 데리고 

지상에 내려와

벼락을 때려

생가지를 찢어놓듯이

사랑은

그렇게 왔다 간다. 노래여! 어떻게

내리는 소낙비를 다 잡아 거문고 위에 눕히겠느냐.

삶이 그것들을 

어찌 다 이기겠느냐.

<필경 中>


위의 시는 2013년 4월에 출판된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이라는 시집에 담겨 있는 시 일부분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 위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면서 새의 모습을 표현한 부분은 마치 날아가는 새가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죠. 또한, 번개와 천둥이 치며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감정인 사랑과 노래가 담긴 삶도, 결국 자연 앞에서는 작은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듯한 표현은 시집 곳곳에서 나타나는데요. 얇은 시집 속에 그의 생각이 가득 담겨 있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음미할 수 있는 기쁨이 있습니다.


박용택 시인의 시를 보면, 우리는 일상에서 넘치는 이야기거리를 그저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 출처 : 교보문고>

 

지나간 길은 돌아보면 발자국이 남습니다. 인생의 길 중 2013년 가을은 '한 편의 시를 읽으며 잊혀가는 단풍의 노래에 귀 기울였다'라고 얘기할 수 있도록, 이번 가을 시 한 편 읽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