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뚱상인 하루하루

취재·인터뷰·보도자료… 실무 글쓰기 깨알 노하우

취재기사·인터뷰·보도자료…

실무 글쓰기 깨알 노하우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하다 출판사 편집자가 된 한 선배의 말이 떠오릅니다.


"글쓰기는 전문직이 아니라 기능직이야."


그때 저는 취직 전이었고, 글쓰기에 대한 동경 내지는 환상 같은 게 컸던 시기라, 선배의 말에 쉽게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많은 기자 지망생, 문학도 등등에게 그러하듯, 저에게도 글이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었던 것이죠.


짧게나마 잡지사와 온라인 매체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지금은 콘텐츠 기획과 기업블로그 관리 등 업무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한때 매우 불경하다 여겼던 그 선배의 말에 이제는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글은 우리 생활에서 매우 일상적인 요소입니다. 어디에나 글이 있죠. 그럼에도 글은 왠지 어렵고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이 참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일인으로서, 글에 대한 아우라(?)가 지나치게 과장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유명 소설가에게 한 팬이 "작가님 글 정말 잘 쓰세요!"라고 경탄했다고 가정해볼게요. 여기서 '글 정말 잘 썼다'라는 것은 복합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작가의 문장력과 통찰력을 두루 아우르는 의미니까요. 문장력은 기술(skill, technique), 통찰력은 철학(philosophy, insight)입니다. 통찰력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작가 개인의 고유한 가치라면, 기술은 누구나 습득할 수 있는 보편의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한 작가를 칭송하고 싶다면, 글쓰기를 언급할 게 아니라 작가만의 독특한 상상력과 세계관을 말해주는 편이 좋겠죠.


"글쓰기는 전문직이 아니라 기능직이야."


선배의 말을 복기해보며, 이번 시간에는 제가 실무에서 체득한 글쓰기 노하우를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업무 중 많이 접하게 되는 상황별로 나름의 요령을 부려놓아보겠습니다.



#1. 행사 취재


- 대규모 전시

   킨텍스, 코엑스 등 전시장이 매우 넓고 볼거리가 다양한 경우.


심층 리뷰를 쓸 게 아니라면 구석구석 전부 다 둘러볼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전시 리플렛을 읽어보며 대략적인 전시 콘셉트를 파악합니다. 수많은 전시 품목들과 참가 업체 리스트를 살펴보면, 한두 가지 겹치는 테마가 나오는데요. 예를 들어 하우징박람회 취재를 나가서 참가 업체 리스트를 보니, 유달리 친환경 자재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날 취재의 골자(속칭 '야마')는 친환경 자재로 잡는 것이 글 풀기에 수월하겠죠.


√ check point  …  전시 품목, 참가 업체 리스트 확인 → 공통분모 찾기 → 그것을 골자로 잡기



- 소규모 전시

   틈새전, 기획전, 콜라보 전시 등


문화 예술 쪽에서는 소규모 기획전들이 많이 열립니다. 아티스트들 간의 콜라보 전시도 많죠. 이런 경우에는 기자 개인의 '해석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대형 박람회처럼 볼거리가 풍부한 것도 아니고, 전시 공간 역시 작다면, 그만큼 객관적 서술로 작성할 수 있는 내용이 부족하겠죠. 따라서 전시에 대한 기획 의도, 작가들의 작품 해석, 이 전시가 어떤 사람들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지 등등을 따져봐야 합니다. 그러려면 전시 자체에 대한 사전 정보를 많이 알아가야 하겠죠.(물론 이런 요소들은 대규모 전시 취재 시에도 해당됩니다.) 대규모 전시에 비해, 오히려 소규모 전시는 기자의 재량(평소 인문학적 교양, 감성, 상식 등)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죠.


 check point  …  소규모 전시 취재 시에는 최대한 많은 전시 정보와 기자 개인의 재량을 활용



- 기념식 및 기업 활동

   기공식, 준공식, 개관식, 봉사 활동 등


각종 기념식이나 기업의 외부 활동(사회공헌, 사내 체육대회 등) 취재는 생생한 현장감 포착이 8할입니다. 텍스트로는 6하 원칙에 맞게 행사 취지와 내용을 서술하고, 사진을 통해 현장의 역동적인 모습들을 담아주어야 합니다. 주요 인사들의 기념사, 행사 참여자들의 소감(꼭지 인터뷰) 등을 녹취하거나 메모해두면 좋죠. 물론, 기사에 수록한다는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하는 건 기본입니다.

※ 사족 : 텍스트(줄글)보다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거라 생각합니다.


 check point  …  현장에서 매우 부지런히 움직일 것.(메모, 녹취, 촬영 등)



- 홍보성 행사

   제품 설명회, 기자 간담회, 제작 보고회 등


언론 매체는 객관적 시선을 유지해야겠지만, 행사 주최 측 취재자라면 어느 정도 PR에 대한 인식을 해야 합니다. 기업 블로그 운영사에서 취재를 나갔는데 객관적으로만 리뷰를 써준다면, 그 취재는 무의미하겠죠. 그렇다고 지나치게 장점만을 부각한다면 글의 품위가 떨어집니다. 이럴 때는 해당 제품·기업·작품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누군가의 쿼트(quote)를 인용하면 좋습니다. 기자 자신의 입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입을 빌려 대신 칭찬을 해주는 것이죠. 이렇다 할 코멘터리가 없다면, 제품·기업·작품의 히스토리와 스펙을 서술해주는 것이 대안입니다. 이 같은 내용은 행사 현장에 마련된 리플렛에 대부분 포함되어 있을 테니, 잘 챙겨서 읽어본 뒤에 발행 플랫폼(블로그, 사보, 페이스북 등)에 맞게 톤앤매너를 적절히 조절해줘야겠죠.


 check point  …  취재의 목적은 '홍보하기'(대행사라면 '대신 홍보해주기')라는 점을 인지할 것



 

<한 태블릿 제작 업체의 신제품 발표회 취재 현장에 자리한 본인>



#2. 인물 취재


- 단독 인터뷰


인터뷰이의 과거 인터뷰, 관련 기사 들을 모조리 읽고 간다는 생각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인터뷰이의 성향, 인터뷰 기사 자체의 중요도 정도 등에 따라 준비량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명인사, 기자가 소속된 회사와 긴밀하거나 호의적 관계인 인물(투자자, 자문위원 등)이라면 다소 신경을 써야겠죠. 신입 기자의 경우, 괜한 열정에 불타올라 필요 이상으로 사전 준비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편집자나 선배 기자가 "그래, 처음이니까 한번 열심히 해봐" 하고 꼰대스러운 격려를 늘어놓을 게 아니라, 보다 효율적이고 실무적인 조언을 해주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은, '이 인터뷰를 왜 하는지'입니다. 인물을 부각할 것인지, 그 인물이 속한 회사 혹은 그 인물의 작업물(아티스트라면 최근 내놓은 작품이 되겠죠)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야마'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사전 질문도 달라지죠. 좋은 인터뷰는 질문의 질로 완성됩니다.


 check point  …  사전 준비는 인터뷰이와 인터뷰 기사의 중요도에 맞춰 적절히 인터뷰 야마 먼저 잡기 

                             → 그 다음에 질문 정하기



- 그룹 인터뷰


일반적으로 그룹 인터뷰는 두 가지 종류입니다. ①질의응답 형식의 인터뷰, ②구성원 간 대화를 정리하는 대담. ①의 경우는 다시 두 가지로 나뉩니다. ㉠같은 소속의 구성원들 인터뷰하기, ㉡서로 입장이 다른 다수를 인터뷰하기. ㉠은 사실 사람이 여럿이다 뿐이지, 결국 한 사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표현의 차이는 있겠으나, 서로의 소속과 방향성에 어긋나지 않는 일관된 답변이 나오니까요. 문제는 ㉡이죠. 질문은 하나인데, 답변은 여럿으로부터 들려오죠. 정리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특히나 신입 기자라면 진땀 빼느라 혼쭐이 날 겁니다. 이럴 때 조금이나마 수고를 더는 노하우는 인터뷰 기사 개요 작성 시, 소제목을 미리 달아두는 것입니다. 기사 전체를 하나의 큰 트랙으로 본다면, 소제목들로 구간을 나누는 것이죠. 이 소제목들이 인터뷰 현장에서의 진행 순서가 됩니다. 각 소제목에 해당하는 질문들을 미리 그룹핑을 해두고, 인터뷰이들에게 질문할 때마다 하나씩 지워가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인터뷰 흐름을 놓쳐버리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


②의 경우는 ①에 비해서는 수월한 편입니다. 말 그대로 대담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저마다 이야기하는 내용을 차후에 정리만 하면 되니까요. 다만, 이때 기자는 '진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대담이 산으로 가는 분위기라면, 적절히 소재를 전환하는 등 환기시켜줄 필요가 있겠죠.


 check point  …  기사 개요 짜기 → 소제목별로 질문 그룹핑 → 그 순서대로 인터뷰 진행

                             '나는 진행자다' 마인드


 

<유명인사와의 인터뷰 후, 본인>



#3. 보도자료


짧은 기자 생활에서 저의 활동 무대는 주로 '현장'과 '기자실'이었습니다. 현장에선 취재 기사를 쓰고, 기자실에서는 기획 기사와 보도자료를 쓰곤 했습니다. 보도자료를 썼다는 것은, 제 메일함에 수두룩히 쌓여 있는 각종 기업들의 보도자료들 가운데 몇 건을 뽑아 기사화했다는 뜻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심혈을 기울여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그것을 '기자님들'에게 소중히 배포합니다. 그렇게 매일매일 기자 메일함에는 보도자료들이 쌓여갑니다. 이 많은 보도자료들 중에서 기사화되는 건 극히 일부인데요. 몇몇 기업 홍보실 직원들은 보도자료 배포 후 해당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기자님, 보도자료 보내드렸으니 확인 좀 부탁드릴게요."라는 살가운 인사를 전하기도 합니다. 이런 정성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언제나 바쁩니다. 그 많은 보도자료들을 하나하나 다 읽을 시간도 없고, 기사화해줄 만한 여유도 부족하죠.


보도자료의 본질은 기업 홍보입니다. 맞는 말이죠. 하지만 실무적으로 본다면 보도자료의 본질은 '기사회되느냐(=기자에게 선택되느냐)'일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보도자료가 바쁜 기자들에게 선택되어 기사화될까요.


간단합니다. 리라이팅이 필요 없을 만큼 잘 써진 보도자료죠. 기자실에서 이런저런 기업들의 보도자료들을 열람하며 느낀 점이 있습니다. 너무 정성을 들여서인지, 다들 문장이 너무 길다는 점이었는데요. 온라인 매체에 게시되는 기사 형식엔 맞지 않죠. 기자들이 보도자료를 기사화할 때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이 맞춤법 수정과 장문의 단문화입니다. 이를 바꿔 말하면, 맞춤법이 엉망이고 장문(만연체)이 많은 보도자료는 그만큼 기사화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기업 홍보실이나 보도자료 작성 담당 직원들은 평소 온라인 매체에 올라오는 보도자료 기사들을 유심히 살펴봐야 합니다. 큰 제목, 작은 제목, 리드, 본문, 기사에 많이 쓰이는 종결어미 등을 눈에 익혀야겠죠.(그래서 기자 출신의 홍보실 직원이 쓴 보도자료는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초짜 기자였던 제가 기업 보도자료를 리라이팅할 때마다 선배 기자에게 몹시 혼났던 부분이 있는데요. 형용사와 부사를 다 빼라는 것이었습니다. 보도자료가 아무리 홍보성 글이라 해도, 일단 기사의 범주에 놓이는 만큼 철저히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당연히 형용사와 부사는 걷어내야겠죠. 


예를 들어 "다년간 각고의 연구 개발을 추진한 결과, 올 상반기 업계 최초로 이번 상품을 당당히 출시했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 문장은 기사화될 때 "다년간 연구 개발을 거쳐 올 상반기 업계 최초로 이번 상품을 출시했다"로 고쳐집니다. 보도자료 작성 시, 형용사와 부사는 (아쉽더라도) 반드시 걷어내야겠습니다.


 check point  …  보도자료 작성은 기자 마인드로 → 온라인 매체 보도자료 기사 꼼꼼히 읽기

                             형용사와 부사는 뺄 것


 

<한 박람회 취재 현장에서의 본인 뒷모습>



"글쓰기는 기능직"이라 정의했던 선배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글 쓰는 기술만 있으면 굶을 일은 없을 거야."


유년기에 어른들로부터 "먹고살려면 기술을 배워라"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들었습니다. 맞는 말이죠. 기술을 갖고 있으면 쉽게 대체될 수 없을 테니까요. 관건은 그 기술이 보편의 단계에서 머물 것이냐, 아니면 그 기술에 '통찰'까지 더해져 자기만의 고유한 가치로 승격되느냐입니다. 글쓰기라는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은 '테크닉'의 측면에서 쉽게 접근하여 숙련하고, 어느 정도 몸에 익으면 그 다음엔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해보는 단계로 넘어가면 됩니다. 우좌지간, 오늘의 포스트를 통해 전하고 싶은 글쓰기에 대한 메시지는 두 개입니다.


① 글은 기술이다. 그러니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차근차근 숙련하자

② 기술을 가졌으면 그 다음은 통찰이다. 기술 + 통찰 =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