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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요즘 문화 트렌드 3개 키워드 '역사·현실·나다움'

엉뚱상상 콘텐츠 기획자가 정리한 요즘 문화 트렌드

'과거를 알고 현실을 직시하고 나다워져라!'



영화 <시>에 나왔던 인상적인 대사 하나. “시란, 잘 보는 것”. 이 짧은 한마디는, 잘 ‘쓰기’에 앞서서 잘 ‘보기’가 더 중요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비단 시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죠. 사물과 현상을 잘 볼 줄 아는 능력은 곧 ‘통찰력’으로 이어지니까요. 뚱상인처럼 콘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잘 보기’의 기술은 필요합니다. ‘트렌드를 읽는 눈’, ‘시류를 파악하는 감각’, ‘앞을 내다보는 시야각’ 등 거창하게 표현되곤 하는 자질. 쉽게 말해 ‘잘 보는’ 능력이죠.


모든 콘텐츠 기획자는 창조적 관찰자(creative observer)가 되어야 합니다. 잘 보되, 자기만의 필터링으로 해석할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거대한 골리앗을 보고 어떤 이들은 지레 겁먹었지만, 다윗은 “덩치가 저렇게 크니 화살이 빗나갈 일은 없겠군”이라고 말했다고 하죠. ‘멘탈 갑’이기 전에 다윗은 창조적 관찰자였던 것입니다.


시작이 좀 거창했습니다. 뚱상인 본인에 대해서라면, ‘잘’ 보는지는 잘 모르겠고, 우좌지간 ‘많이’는 봅니다. 많이 보다 보면 ‘잘’ 보게도 되리라는 생각이거든요. 그동안 TV와 온라인 공간을 봐오면서 어떤 ‘흐름’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요. 콘텐츠 기획 실무자가 바라본 요즘의 문화 트렌드,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과거(역사), 현실, 그리고 나다움. 하나씩 살펴보자고요. 



‘닥치고 긍정’ 류의 자기계발 콘텐츠 몰락

실질적이고 실증적인 지식과 역사 콘텐츠 부상

막연한 ‘미래’ 지고, 확실한 ‘현재’와 ‘과거’ 뜨다


물론 아직까지는, 서점에 나가 보면 매대에 잔뜩 진열된 자기계발 서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스타 저자들의 섹션이 따로 분류돼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전만큼 불티나지는 않는 듯합니다. 불과 1~2년 전까지 멘토다, 힐링이다, 청춘이다, 긍정이다 해서 한껏 부풀어 있던 시장이 확연히 쪼그라든 모양새입니다. 매출 현황에서 드러나죠. 교보문고가 얼마 전 발표한 2014년 상반기 판매 동향을 보니,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자기계발서 판매 권수가 -21.1%, 판매액이 -21.9%더군요. 매출 통계 자료에서 20% 이상의 감소 수치는 일반적으로 ‘급감’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역사 문화 서적들은 웃었습니다. 작년 상반기보다 판매 권수 12.9%, 판매액 13.2% 성장세를 보였죠. 흥미로운 결과입니다. 미래 지향적인 ‘자기계발’이 지고, 현재와 과거에 집중하는 ‘역사 문화’가 뜨고 있군요.


먼저 던져봐야 할 질문.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자기계발서는 왜 몰락한 걸까요? 뚱상인은 무엇보다도 대중의 의식 수준이 1~2년 사이 부쩍 향상했다고 봅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우리나라에는참 많은 일들이 있었죠. 윤창중 청와대 전 대변인의 인턴 성추행 사건, 국정원의 선거 개입 의혹, 청와대의 언론 장악 의혹, 대학총장 추천제로 신입사원을 채용하겠다고 했던 삼성(‘대학 줄세우기’ 논란을 일으키고는 결국 철회했죠), 그리고 벌써 100일이 지난 세월호 사건 등등. 이런 정국 속에서 과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통할 수 있을까요? ‘언니의 독설’이 먹힐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정부·기업·언론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중은 보다 본질적인 ‘구조적’ 문제에 관심 갖기 시작했죠. 아프니까 청춘이다? 왜 아픈 건데? 우리가 아플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는 대체 뭔데? 이런 질문들에 대해 소위 멘토라 불리는 사람들은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했고, 그들의 처방전인 ‘힐링’ 또한 약효가 없었습니다. 멘토와 힐링의 몰락은 이미 그들의 등장에서부터 예견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종의 진통제 같은 것이죠. 환부를 째고 봉합하는 수술이 아니라, 그저 지금의 아픔을 잠시 잊도록 하는 인슐린 역할이었으니까요.


 

과거 역사를 통해 현재를 조망한 콘셉트로 큰 인기를 끈 드라마 <정도전> / 출처: 공식 홈페이지


본질을 찾아 나선 대중의 눈은 ‘현재’와 ‘과거’에 집중됩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죠.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당면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이 ‘미래’에 있을 리가 없죠. 이처럼 대중의 시선이 미래에서 현재와 과거로 이동함에 따라, 콘텐츠 시장 역시 변화를 맞게 됩니다. 정통 사극으로 오랜만에 대박을 터뜨린 <정도전>이 대표적이죠. 이성계, 이방원, 정도전 등 조선시대 정계 인물들이 벌이는 갈등 양상은 현 시국과 포개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역사드라마 한 편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함께 접하게 되는 셈이죠. 영화 쪽에서는 <변호인>과 <또 하나의 약속> 같은 작품들이 이슈가 되었죠. 둘 모두 대한민국에 실제 벌어졌던 상황을 모티프로 취해 극화한 영화입니다. <변호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담당했던 부림사건을,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반도체 근로자들의 집단 백혈병 문제를 소재로 삼았습니다. 이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정부와 기업의 압제적이고 비상식적인 측면을 부각하여 사회 구조적 문제를 파고들었습니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겉핥기식 긍정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있던 대중의 카타르시스를 자극했습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우리의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현주소를 직시한 것이죠. 그러니 눈이 높아질 수밖에요. 따라서 멘토들의 힐링, 즉 자기계발 테마는 더 이상 콘텐츠로서의 매력을 잃게 된 것이죠. 덮어놓고 밝은 미래만 상상하던 ‘중2병’ 대중은 이제 없습니다. 그들은 막연한 미래가 아닌, 실질적이고 실증적인 현실 지향적, 역사 지형적 콘텐츠를 원하고 있습니다. 요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수두룩하게 올라오는 각종 ‘노하우’ 콘텐츠들 역시, 현실의 삶에 포커스를 맞춘 것들이라 할 수 있겠죠.

 


모두의 목소리보다는 개인의 목소리 선호

일개 영화평론가가 ‘섹시 아이콘’이 될 수 있는 시대

연예인의 ‘외모’뿐만 아니라 ‘개념’까지도 매력 포인트

 

영화평론가 허지웅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남자인 뚱상인이 보기에는 딱히 잘생긴 구석도 없고, 말솜씨가 좋은 것 같지도 않고, 글솜씨가 특출나 보이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다만, 이거 하나는 인정합니다. 허지웅은, 잘 봅니다. 영화만 잘 보는 게 아니라, 사회 현상 역시 잘 보고 있는 듯합니다. 그는 영화 칼럼뿐만 아니라 정치 칼럼도 쓰는 사람이더군요. 특히 <20대가 사라졌다>라는 칼럼에서 “지금 한국의 20대는 ‘세대가 없는’ 세대”라고 단언한 대목과 그 논거는 설득력이 매우 강했습니다. 설득력이 강하다는 것은 즉, ‘매력적’이라는 뜻이죠. 허지웅은 글 속에서 매우 단호하고 직선적으로 자기 주장을 펼치는 타입입니다. 완곡 어법으로 에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서론에서의 색채가 본론과 결론으로 쭈욱 이어집니다. 서론과 본론은 독설이었는데, 결론에 가서 갑자기 ‘훈훈하게’ 마무리짓는 타협이 없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이 사람이 꽉 깨물고 있던 어금니의 힘이 그대로 글에 스며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허지웅이라는 사람의 스타일이 확실한 거죠.


허지웅은 과거에도 허지웅이었습니다만, 지금과 같은 허지웅은 아니었죠. ‘뇌가 섹시한 남자’ 같은 오글거리는 찬양 따위를 듣던 글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비호감에 가까웠죠. 허지웅이 자기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린 계기는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외국 자본과 배우들, 그리고 북미 개봉까지. 한국의 일개 코미디언이 해외 시장을 겨냥하여 만든 이 대작은, 형편없는 작품성에도 불구하고 심형래라는 일인의 역경 스토리와 맞물려 관객 몰이에 성공하고 있던 찰나였습니다. ‘애국 마케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마치 이 영화를 칭찬하면 ‘트렌디한’ 것이고, 비판하면 ‘삐딱선’인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이 와중에 허지웅이라는 영화평론가는 <디 워>에 거침없는 비판을 가했죠. 이름을 알리기는 했는데, ‘악명’이었습니다. 당시 <디 워>를 비판했던 평론가들을 대중이 얼마나 혐오했었는지를 상기해본다면, 허지웅의 유명세는 그리 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뇌가 섹시하다는 것은 '나만의 뇌'를 가졌다는 얘기 / 출처: JTBC <마녀사냥> 캡처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죠. 그때나 지금이나 허지웅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게다가 자기를 잘 꾸밀 줄 알더군요. <마녀사냥>이나 <썰전>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그의 스타일링은 확실히 눈에 띄었습니다. 자기 목소리와 더불어, 자기 스타일까지 확실한 사람. 자신만의 전문 분야(허지웅의 경우에는 ‘글쓰기’)를 정확히 노출할 줄 아는 사람. 요즘 대중이 원하는 매력남의 조건 아닐까요? 요컨대 모두의 목소리보다 개인의 목소리를 선호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우리’라는 조직을 위해 ‘나’를 수그려야만 하는 태도가 더 이상 ‘성숙’이라 할 수 없는 시절이 온 것이죠. 일반 대중은 ‘나’를 제대로 표현할 기회를 매일같이 박탈당하며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내 의견만 고집했다가는 해고 통보 받기 십상이죠. 집안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생활하다가는 분란이 끊이지 않을 겁니다. 7080세대, 즉 현재 20~30대의 부모 세대까지만 해도 ‘나’를 내려놓는 인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숭고한 것이었습니다. ‘나’보다는 늘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어왔던 세대들이었죠. 지금은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나’보다 ‘우리’를 강조했던 세대들이 이룩해놓은 대한민국 사회란, 결과적으로 오늘날 20~30대를 피 말리는 경쟁 체제 속으로 집어 넣었죠. ‘나’라는 개인은 국가와 기업이라는 ‘우리’에게 흡수되어버리고, 시나브로 개성과 색채가 사라진 똑같은 일상들이 반복됨에 따라, 젊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습니다. 


 

'나답게' 참 잘 살아가시는 것 같은 가수 이효리 / 출처: 이효리 블로그


20~30대 대중의 행복과 ‘나다움’에 대한 갈망은 콘텐츠 수요로 이어졌습니다. 독립출판을 통한 일반인들의 책 쓰기 유행,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 에세이 공모전은 ‘나다워지고 싶은’ 사회인들의 욕망을 짐작하게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예인을 대하는 대중의 시선도 많이 바뀐 듯합니다. 외모와 재능(연기력, 가창력 등등)에 더하여 ‘개념’이라는 매력 포인트가 추가되었잖아요. 정치적으로 입 바른 소리를 하는 스타, 소외 계층에게 관심 기울이는 스타, 톱스타임에도 소탈하고 소소한 생활을 즐기는 스타. 우리는 이들을 ‘개념 스타’라고 부릅니다. ‘개념’이란 뭔가요? 달리 말해 ‘나다움’입니다. 매니지먼트 회사가 시키는 대로, 계약한 대로, 대중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아바타가 아니라, 자기만의 확실한 개념을 갖추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스타의 모습. 나다움에 목말라 있는 대중에게 자극이 될 만하죠. 허지웅에게 수여된 ‘뇌가 섹시하다’라는 극찬은, 결국 ‘자기만의 뇌를 갖고 있다’라는 뜻일 겁니다.

 


콘텐츠 기획자인 당신에게 묻는다

“과거를 알고 현실을 직시하고 있습니까? ‘나다운’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있습니까?”


이 두 가지 질문은 제 자신에게 던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남성 잡지사의 에디터인 한 선배가 그러더군요. 우리는 콘텐츠 수용자가 아니라 생산자이기 때문에 결코 수용자와 똑같은 시선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뚱상인은 이 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왜 ‘수용자’와 ‘생산자’라는 경계를 나누나요? 프로슈머 시대잖습니까. 애플의 부사장을 지냈던 제이 엘리엇은 저서 <아이리더십(iLeadership)>에서 스티브 잡스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완벽한 소비자”라고. 비틀즈와 폴리스를 좋아했던 잡스는 본인이 음악을 소비하며 느꼈던 불편에서부터 아이팟과 아이튠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소비자로서의 요구 사항을, 생산자로서의 아이디어로 전환한 것이죠. ‘수용자’와 ‘생산자’의 경계가 나뉘었다면 불가능했을 결과입니다. 이 글에서 살펴본 세 가지 대중 문화 키워드―현실과 과거 지향적, 나다움―는 곧 콘텐츠 기획자인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당신도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콘텐츠를 만들기에 앞서 질문해봐야겠죠. 나는 얼마나 현실을 직시하고 과거를 잘 알고 있나? 콘텐츠 기획자로서 나는 얼마나 ‘나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