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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아이폰5와 아이폰6로 '막' 찍다

아이폰5와 아이폰6로 ‘막’ 찍다

 

 

뚱상인과 같은 소셜마케팅 종사자라면, 업무 특성상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 채널을 늘 주시할 텐데요. 콘텐츠 게시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아무래도 시각 요소일 겁니다. 때로는 유머 코드로, 또 때로는 감성 자극 콘셉트로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일종의 ‘연출’이지요. 이런 연출의 업무가 반복되다 보면, 정형화되고 부자연스러운 이미지들에만 익숙해질까봐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평상시에 코드, 콘셉트, 구도, 타깃, 기대효과 등등은 다 잊고, 그냥 눈 가는 대로 손 움직이는 대로 마음대로 뭔가를 촬영합니다. 나름의 매너리즘 예방법일 수도 있겠네요. 이런 ‘막 찍기’ 는 실은 막 찍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냥, 막, 찍는 것일 뿐이지요. 그런데 얼마 전 영화감독 박찬욱의 인터뷰를 읽고, 저의 막 찍기 취미에도 그럴싸한 의미 부여가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박찬욱 감독 인터뷰 지면 / 이미지 출처: <매거진 B>

 

(···) 영화는 있는 그대로의 무언가를 기록하는 그런 매체가 아니잖아요. 많은 것이 꾸며지고, 디자인되고, 세공된 그런 종류의 작품이어서 다른 방식의 작업들이 제게는 좀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는 어떤 연출도 하지 않고, 특별히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찍지도 않아요. 전혀 건드리지 않은 상태, 생활에서 발견되는 볼품없는 것을 찍죠. 언뜻 보면 영화감독이 사진을 찍는다는 게 굉장히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일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다른 일이기도 합니다. 

박찬욱, <매거진 B> ISSUE No.34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 같”다는 모티브와 “어떤 연출도 하지 않고, 특별히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찍지도 않”는다는 방법론적 측면에서 저의 ‘막 찍기’ 취미는 박찬욱 감독의 사진 촬영 취향과 비슷하다고 봅니다.(하하..)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저는 아이폰을, 박찬욱 감독은 라이카(Leica)를 사용한다는 점 정도겠지요.(하하하..)

2년간 아이폰5 유저였다가 얼마 전부터 아이폰6 플러스를 들고 다닙니다. 액정 화면이 4인치(아이폰5·아이폰5s·아이폰5c)에서 5.5인치로 확장된 만큼 손 안에 쥐어지는 밀착감(그립감)이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그래도 800만 화소로 시원시원하게 찍히는 사진은 대만족이네요.

요즘 ‘아이폰6로 찍다’라는 카피를 표방한 애플의 광고 컷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이더군요. 전 세계 24개국 70개 도시의 아마추어 포토그래퍼들이 아이폰6로 촬영한 사진들이라고 합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멋지게 찍을 수 있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설정한 광고이지요. 전문가의 전문성 못지않게 비전문가의 자율성(철학자 강신주의 말을 빌린다면 “무학의 통찰”) 또한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이폰6로 찍다’ 월드 갤러리 / 출처: 애플


사설이 길었네요. 그동안 ‘막 찍기’로 모아둔 사진 몇 장들을 올려봅니다. 위에 인용한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은 포토그래퍼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로 ‘시선(point of view)’을 말했습니다. 결국, 누군가의 사진은 그 누군가의 시선이겠지요. 저의 시선을 느껴주시기 바라며-

 

 

▲ 출근길인 홍대 근처. 이 길이 아침에는 이렇게 조용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서교동의 어느 카페.

 

연남동 한식당 오우(OU)의 문화예술 모임. 시집 <철과 오크>를 쓴 시인 송승언(사진 맨 왼쪽)과 독자들.

 

등촌동 어느 오피스텔 외부 주차장에서 바라본 모습

 

이 사진 역시 등촌동 어느 오피스텔 외부 주차장에서 찍음.

 

▲ 어떤 생물에게 오후 12시 45분경이란 두 다리를 모으고 문 밖을 내다보는 시간.

 

다소곳하게 사물을 응시하는 어떤 생물의 시선

 

어느 카페의 벽

 

맥북에어 표면.(아이폰 배경화면으로 사용하려고 촬영)

 

나무의 몸, 혹은 얼굴.

 

옥상에 자리한 술집. 술 마시고 잠시 바람 쐬러 나와 아래를 보니.

 

퇴근길에 잠깐 시선을 두었던 통풍구.

 

붉은 가로등 아래.

 

집 앞 새벽녘. 검정과 녹색.

 

비 오던 날의 바닥.

 

아파트 표면의 나무 그림자.

 

새벽 아파트.

 

아무나 못 만지는 어떤 것.

 

방 안, 배트맨 피규어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