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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상상] 문래동 예술촌은 녹슬은 거친 질감의 붉은 노을을 닮았다

뚱상인 하루하루

문래동 예술촌은 녹슬은 

거친 질감의 붉은 노을을 닮았다




문래동을 다녀왔습니다. 문래동하면 대형마트가 있는 역 근처뿐이 모르고 살았는데 그 반대쪽으로 가니 참 보기 드문 곳이 나오거든요. 텅 비어 있는 듯, 점점 꽉 들어차고 있는 문래동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문래동 철강 단지는 '아빠의 청춘'이었다

오후 5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문래 3가, 철강 단지는 하루 중 딱 오후 4시를 닮았어요. 



처음 문래동 골목을 걷게 된 것은 오후 3시 정도의 뜨거움을 품고 있던 1988년입니다. 그때는 아버지와 함께 였습니다. 아버지의 공장이 여기 문래동 철강 단지 안 샤링 골목에 있었거든요. 그 때는 왜 샤링 골목이라고 부르는지 몰랐습니다. 지금에서야 알게 되네요. shearing, 금속을 원하는 모양대로 자르는 작업이라는 뜻을 가진 골목이더라고요. 샤링은  shearing을 부르는 그들만의 속어였습니다. 1988년만 해도 문래동 철강 단지는 주말에도 고막이 춤을 출 정도로 요란한 기계 소리가 화음처럼 들렸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뭐, 어린 시절인데 화음은 무슨,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시끄럽기만 했겠죠. 


  


하지만 그 시끄러운 소리가 우리 가족이 한 달을 버티는 힘이었어요. 그렇게 시끄럽고 치열하게 금속 부품을 찍어내던 작업장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한 평 정도의 사무실에 들어가면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조용해졌었습니다. 그 속에서 아버지와 도시락을 나누어 먹고 아버지를 기다리며 티비를 보다가 잠들기도 했는데 말이죠. 그 모습을 오늘 다시 보게 되었네요. 딱 27년 만에 말이죠. 삶의 치열함을 알지 못했던 초등학생이 이제 아버지를 이해할 때쯤 되었으니 느끼는 것 또한 남다를 수 밖에 없더군요. 생각해보면 그 1988년의 아버지는 지금의 제 나이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처럼 저도 치열한 세상 속에서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것, 수많은 금속 조각들 대신 수많은 서류 더미 속에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문래동 철강 단지는 사라지지 않는 아버지의 청춘을 기억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금속의 차가움은 어느 새 무뚝뚝하지만 따뜻하기만 했던 부정을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1997년, 너무나도 추웠던 그 해 겨울. 그리고 멈춰버린 기계 소리

1997년 여름, 우리 집은 삭월세 지하방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저 아버지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죠. 



1997년 12월 3일, 대한민국 정부는 국가부도를 정식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서민들은 이미 예감하고 있었고 국가는 가장 늦게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부터 2000년 12월 4일까지, 3년 간의 시기를 단 세 개의 알파벳으로 이야기합니다. 바로 IMF 시대. 


IMF 때문에 우리가 잃게 된 것들 중에서 두 가지를 꼽으면, 하나는 평생의 직장이라는 개념입니다. 얼마 전까지 tvN에서 방영된 '미생'에서는 직장인의 애환, 그중에서도 계약직이라는 계급의 설움을 다루었죠. IMF로 인해 새로운 피지배 계급인 '계약직'이 생겨나게 됩니다. '회사-정규직-계약직'이라는 먹이사슬이 새롭게 형성되었던 것이죠. 회사는 스펙을 따지기 시작했고 스펙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2년에 한 번씩 회사를 떠돌아야 했습니다. 일단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많은 대졸자들은 계약직을 받아들여야 했죠.


  


IMF로 잃게 된 다른 하나는 가장의 몰락, 가족의 해체였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일하던 사업장을 잃게 되었습니다. 문래동 철강 단지에서 힘들지만 기쁘게 일하던 아버지는 문을 닫던 마지막 날, 참 많이 취했고, 참 많이 울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죠.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축 쳐진 아버지의 어깨를요. 하루 아침에 부도를 맞은 아버지의 사업은 집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죠. 갚아야 하는 어마어마한 빚 때문에 대학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식들, 아무 준비 없이 돈을 벌기 위해서 일터로 향해야 했던 아내. 그래서 우리 아버지들은 더더욱 떳떳하지 못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책임지지 못해 아내와 자식들에게 짐을 짊어지게 했다는 것 때문에 말이죠. 


 


IMF는 문래동 철강 단지에 더욱 큰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영세 사업장은 그 고통을 가장 최전선에서 맞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시작되었어요. 그 넓던 지대에 버려진 공장이 늘어난 것이 말이죠. 그 때 잘 나가던 철강 단지의 사장님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요? 아버지 공장 옆에서 기계를 돌리시던 사장님이 궁금해졌습니다.


 


여기 빈 방 있어요

2000년 12월 4일, IMF에서 벗어났지만 한 번 떠난 사람들은 다시 문래동에 돌아오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전히 비어있는 공장과 사무실, 처분도 하지 못한 막대한 설비, 그래서 멈춰버린 기계들. 밀레니엄을 우리 아버지들은 마음 편히 즐길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비어있는 사무실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값싼 작업장이 필요했던 예술가들입니다. 이때부터 살아남은 사업체의 기계 소리와 예술인들의 작업 소리가 공존하기 시작한 것이죠. 1층은 전과 같이 철강 관련 사업장이, 그 위로 예술인들의 작업 공간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홍대와 신촌 일대의 임대료가 비싸지면서 문래동 철강 지대엔 예술인들의 입주가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작년 12월 뉴스에서는 문래동에 터를 잡은 예술인의 숫자가 250여명에 이른다고 하더군요. 


 


어떤 곳이든 외부인을 처음부터 반기는 곳은 없습니다. 문래동 철강 단지의 철공인들도 그랬었다고 합니다. 여튼 이렇게 노동자와 예술인의 동거가 시작되었는데요, 친해지는 방법은 먼 곳에 있진 않았습니다.




2008년 봄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벽화들

드디어 이곳에 모인 예술인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문래동에 모인 예술인들은 2007년 봄부터 '경계 없는 예술 프로젝트', '물레아트페스티벌' 등의 행사를 진행하면서 자신들의 존재를 지역 주민들에게 알리고 소통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게 됩니다. 이 행사가 진행 되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철공인들뿐 아니라 지역 주민과 관람객에게까지 큰 호응을 얻기 시작했죠. 그리고 2008년 7월, 드디어 첫 번째 벽화가 공장 벽에 그려졌습니다. 이후 점점 늘어나 지금의 벽화마을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그들은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요? 철공인들과 예술인들은 똑같이 생긴 목장갑을 나눠 끼우고 한쪽은 망치를 들고, 다른 한쪽은 붓과 페인트를 들고 있었겠죠. 그리고 서로 웃으며 자기 공장의 벽과 철문을 내어주었을 거란 상상을 해봅니다. 마음이 포근해지는 순간이네요. 


  


하지만 예술촌에도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서울시의회가 준공업지역 공장부지에 최대 80%까지 아파트를 건립할 수 있도록 조례를 개정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재개발 바람이 불어 임대료가 오르기 시작한 것이죠. 자발적으로 만들어 활동하고 있던 이곳의 예술인들은 어디로 가야 했을까요? 다행스럽게도 문래동 3가 예술촌은 새로운 산업단지 조성을 지양한다는 서울시의 발표로 겨우 진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반발은 계속되었죠. 이런 상황에도 예술인들은 자신들이 일구어 놓은 것을 지키기 위해 'Pre 문래예술공단 Open Studio'를 열어  ‘어린이 1일 예술체험교실’과 ‘문래 창작촌 투어 프로그램’ 등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2014년의 문래동 예술촌과 앞으로의 문래동의 모습

매년 봄이 되면 새로운 벽화가 등장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2014년은 문래동에게는 특별한 해였습니다. 아직도 포털 사이트에서 문래동이라고 검색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뉴스, 2014년 4월 13일 '어벤저스2'의 촬영이 있었습니다. 올해 4월에 개봉한다죠? 극장에서도 문래동의 모습을 볼 수 있겠군요. 또 다른 뉴스는 작년 11월에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이었는데요, 역대 대통령 중 문래동을 방문한 건 50여 년만에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문래 소공인특화지원센터' 개소식에 참여한 박근혜 대통령, 부디 그녀의 말처럼 이곳 문래 철강 단지의 정직함을 만지는 소상공인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문래동에 공존하고 있는 예술인들의 예술도 오후 5시의 붉은 노을처럼 더 아름답게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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