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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훌쩍 여행 떠나고픈 6월, 살랑이는 바람과 함께 읽고 싶은 책

초여름의 햇살이 내려와 세상에는 초록빛의 잎들을 간질입니다. 파란 하늘 위 두둥실 떠 있는 구름은 어디로 바삐 가는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참 자유롭네요. 아파트 담장에 하나둘 핀 빨간색 장미의 노래마저 아름답습니다. 이런 모든 것이 가득한 6월. 한 해의 절반을 채워가는 시간 속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 하나. 


'여행 갈까?' 


막연하게 떠오른 생각 하나가 발길을 옮기게 합니다. 어디로 갈지 누구와 갈지는 정하지 않은 채 그렇게 가고 싶은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여행을 떠나게 되죠. 아무런 생각 없이 갔다가 많은 생각을 하고, 일상의 묵은 잡념을 털어놓은 자리에 다른 느낌들을 담아 돌아오는 것이 여행의 묘미입니다. 그 여행에는 사람이 느끼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는지는 여행을 간 사람만이 가지는 특권이죠. 이 특권을 많은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들에게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마법같이 선물하는 책이 있습니다. 어떤 책인지 함께 만나보실까요? 

 


아는 지인에게 책 한 권을 소개받은 것이 작년 이맘 때. 그분은 "읽고 나면 여행을 떠나지 않을 수 없을걸?" 하시며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책을 건네주셨습니다. 그때는 농담처럼 던지는 말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흘렸죠. 시간이 지나 책장에 꽂혀 있던 그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운명처럼 다가올 무언가를 느껴서였을까요? <끌림>이라는 책 제목은 두 글자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책을 펼쳐 읽어나가면서 희한하게 가슴 깊은 곳에 스며들어 알 수 없는 힘으로 움직이게 하는 마법이 펼쳐지기 시작하더군요. 


작가인 이병률 시인은 여행하면서 자신이 느낀 감정을, 만났던 사람을, 일상에 산재한 감정의 조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옮겨놓았습니다. 때론 이해가 되지 않던 글도 같이 있는 사진 한 장에 이해가 되기도 하고, 와 닿지 않던 사진도 글과 만나면, 서로 다른 나물들이 고추장 한 숟가락 넣어 비비면 비빔밥이 되어 하나가 되는 것처럼 어울리게 됩니다. 어떤 곳이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고 그곳에 가보라고 얘기하지 않지만, 책을 읽으면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쉽게 떠나지 않게 되죠.

 


책 속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고 때론 사랑을 노래하기 위해서 책이 쓰인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이야기가 모두 여행을 통해서 적어놓은 것들이라고 하니 여행을 떠나면 사랑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마저 믿게 하는 마력이 있죠. 마치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자신이 하는 여행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쓰인 글귀에 가슴 먹먹함을 안게 됩니다.


청춘은 한 뼘 차이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내가 맞지 않았던 것도,

그 사람과 내가 인연으로 스치치 못했던 것도

그 한 뼘 차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007


사랑은 그런 의미에서 기차다.

함께 타지 않으면 같은 풍경을 나란히 볼 수 없는 것.

나란히 표를 끊지 않으면 따로 앉을 수밖에 없는 것.

서로 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같은 역에 내릴 수도 없는 것.

그 후로 영원히 영영 어긋나고 마는 것. #019


어느 화려한 자리를 빠져나와 어두운 골목길에서 

시시덕거리며 감자칩을 사고 내가 '감자칩에 소금이 묻어 있지 않다면'이라는

가정을 세우다가 감자는 소금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둘이서 검은 길 바닥 위에

감자칩을 이어 붙여 '사랑해'라고 써놓고 도망쳤던 밤. #025


단지 글을 읽으면서 가보지 않은 곳이 상상 속에 그려지고 벌써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지 않나요?



 

<끌림> 이후에 다시금 여행산문집으로 나온 것이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도 사진과 글이 녹아서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싹트도록 무럭무럭 물을 줍니다. 사진 속에 사람을 담았고 글 속에 사랑을 담아서 살며시 건네주는데 어찌나 엉덩이가 들썩이던지. 


삿포로에 갈까요.

멍을 덮으러, 열을 덮으러 삿포로에 가서 쏟아지는 눈발을 보며 술을 마실까요.

술을 마시러 갈 땐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스키를 타고 이동하는 거예요.

전나무에서 떨어지는 눈폭탄도 맞으면서요.

동물의 발자국 따라 조금만 가다가 조금만 환해지는 거예요.

하루에 일 미터씩 눈이 내리고 천 일 동안 천 미터의 눈이 쌓여도

우리는 가만히 부둥켜안고 있을까요. #011


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의 색깔이 좋다는 말이며,

당신의 색깔로 옮아가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 색깔이 맘에 들지 않는다,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했을 경우,

당신과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켜야 하는 사이라는 사실과

내 전부를 보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동시에 통보하는 것이다. #029


이제 몸짓의 언언의 벽은 넘은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다른 나라 말을 잘하고 싶다.

사람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려면 통역 따위의 번거로움은 없어야 한다.

사랑도 마찬가지. #031 


가만히 불어오는 바람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늘에 앉아 나무 사이의 햇살의 눈부심을 즐길 수 있다면 두 권의 책에서 선물한 '여행'을 찾아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