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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영화 '록키'는 내 이야기?!


가정에서 왕이 되고 싶어하는 아버지와 그 남편에게 지지 않는 성격을 가진 어머니 밑에서 슬라이라는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가난했기에 제대로 된 병원이 아닌 뉴욕 뒷골목에 있는 자선병동에서 태어난 아기는 아마추어 의사에 의해 실수로 안면 신경 중 일부가 끊어져 버렸고, 그의 안면 중 왼편 눈 아래가 마비되어 왼쪽 뺨과 입술을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으며 심지어 치명적인 발음 장애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불행의 시작이었죠.

우스꽝스러운 얼굴 생김새와 알아듣기 힘든 발음은 슬라이에게 소수만의 친구들을 허락했는데요, 그중 한 명의 이름은 '
고독'입니다. 친구를 거의 사귈 수 없었던 슬라이의 성격은 자연스레 폐쇄적인 것이 되어갔고 그의 아버지 프랭크는 아들의 이런 독특한 태도를 ‘자신에게 반항하는 것’으로 여겨 그를 더욱 모질게 다뤘습니다. 결국, 슬라이가 억눌린 욕구를 표출시키는 길은 한 가지밖에 없었죠. ‘폭력적이고 반항적인 아이가 되는 것' 이것이 그 당시 슬라이가 선택했던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소문난 문제아이며 말썽꾸러기였기 때문에 더는 옮길 학교가 없을 지경이었던 슬라이는 다행히 포기를 모
르는 어머니의 아들이었죠. 어머니의 노력으로 정서상 문제가 있는 학생들을 특별히 고안된 교수법으로 ‘정상아’로 길러 내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매너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교육다운 교육과 발음 교정, 급우들과 친해지는 법을 배웠습니다. 모든 체육분야에서 상당한 재능을 과시하며 자신의 해디캡을 잊고 풋볼팀의 주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또 한 번의 어머니의 노력으로 아메리칸 칼리지에 진학하게 되었고 체육 쪽의 재능 덕분에 그는 이 대학에서 복싱 코치
를 맡았고 졸업하기 직전에는 대학 내 연극 단체에서 주관했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의 비프 역을 맡아 최초로 ‘본격적인 연기의 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발음 장애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대인 기피증이 있었던 슬라이는 비프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면서 ‘나도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배우’라는 직업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졸업 후 그는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마이애미 대학에 입학했지만 투박한 발음과 독특한 외모 때문
에 슬라이는 학부생들이나 교수들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죠. 하지만 슬라이의 반항 기질은 이곳에서도 여전히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슬라이는 교수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신만의 대사를 써서 수업 시간에 활용하는 것을 즐겼는데요
, 이 때문에 미운털이 제대로 박히게 되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학부의 공연 작품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자, 슬라이는 자신이 직접 쓴 대본을 가지고 대학의 지하 창고에서 자신만의 1인 연극을 하며 기량을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관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주위의 냉대와 절망스러운 상황에 그는 서서히 지쳐갔고, 결국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해 대학을 그만두게 됩니다. 대학을 그만둔 슬라이는 보다 큰 인물이 되기 위해 브로드웨이를 선택하게 됩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슬라이의 전공은 연기가 아닌 ‘실패’와 ‘좌절’이 되었습니다.
일단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피자 배달부, 식당 종업원, 동물원 잡역부 등을 전전하며 푼돈을 모았지만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슬라이는 ‘일단 살고 보자’라는 일념으로 돈을 위해 두 번이나 옷을 벗게 됩니다. 첫 번째는 배우로서의 최악의 선택인 포르노 영화에 출현한 것이고 두 번째는 카메라 앞이 아닌 연극에서 옷을 벗습니다. 부부스와핑을 주제로 한 이 연극은 평론가들의 미움을 제대로 사게 되었지만, 전화 수리공 역을 맡았던 슬라이의 연기
만큼은 호의적인 평을 내린 매체도 극소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던 슬라이의 손을 잡아주었던 이는 바로 연인 사샤였습니다. 그녀는 유명한 여배우가 되
겠다는 자신의 꿈까지도 포기한 채, 동거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슬라이의 뒷바라지를 하기 시작했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가하고 가난뱅이 커플이라는 꼬리표를 떼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브룩클린의 아이들>에서 비중 있는 역활을 맡게 되었고 자신이 연기한 캐릭터 ‘스탠리’의 대사의 상당 부분을 직접 쓰면서 각본가로서의 자신의 자질을 인정받은 슬라이는 배우로서 자신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하고 결국 다른 삶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펜을 들기로 결심합니다.

‘이번에는 정말 끝을 보자’라는 비장한 각오로 검은색 스프레이를 사 와서 창문을 모두 칠했으며, 전화 코드도 뽑아
버리면서 적어도 글을 쓰는 동안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을 골방에 가둬놓은 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글을 써내려 갔습니다. 한 번 점화된 그의 집필 에너지는 자신도 놀랄 정도로 무시무시했는데요, 문제는 그의 각본에 관심을 가지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보다 많은 기회를 보장해주는 곳(할리우드)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슬라이는
이곳에서도 오디션이 없는 날에는 쉬지 않고 각본을 써내려갔습니다. 그는 수십 편에 달하는 TV극 및 영화의 각본을 썼
는데, 그중에는 <헬스 키친 Hell's Kitchen>과 같이 운 좋게 팔려나간 것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작품은 제작자들의 주목을 전혀 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았던 곳에서 슬라이는 새 각본의 소재를 찾아냈습니다. 운명의 장난처럼 복싱 팬이었던
슬라이는 우연히 그날 '말 많은 경기‘의 중계를 보기 위해 윌턴 시어터를 찾았고, 그곳에서 그의 인생을 바꾼 운명의 게임!! 바로 무하마드 알리와 척 웨프너의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그 경기는 무명의 복서였던 척 웨프너가 무적 알리를 상대로 15회까지 싸운 경기였으며, 놀랍게도 9라운드에서 다운까지 얻
어내는 기적 같은 경기였습니다. (물론 TKO 승으로 알리가 승리합니다.) 하지만, 무명의 복서에게는 사실상 승리나 다름없는 경기는 슬라이에게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이 시합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하여 ‘무명 복서’의 이
야기를 3일 동안 미친 듯 써내려갔고,
이렇게 <록키>의 첫 번째 드래프트는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몇 번의 수정과 제
작자와의 질긴 협상 끝에
실베스터 스탤론(별명 슬라이)는 주연역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록키가 어떻게 되었는지 스
베스터 스탤론이 어떤 배우의 삶을 살았는지는 여러분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여러분에게 들려 드리고 싶은 스토리도 여기까지입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에서부터 즐거운 시기, 끈기 있게 버텨야 할 시기 들이 있는데요.
지금 여러분의 시기는 몇 라운드인가요? ^^

 



<BGM이 저절로 떠오르는 명장면 중에 명장면!  / 이미지 : 영화 '록키1'>


<또 하나의 명장면! 판정으로 진 록키와 시합 후 인터뷰를 마다하고 연인인 '애드리안'을 외치는 장면>




<열 살 때의 스탤론의 모습 / 이미지 출처 :
DVD프라임 사이트 '김정대의 컬트필'의 '불타는 록키의 연대기'>



* 위에 내용들은 DVD프라임 사이트 '김정대의 컬트필'의 '불타는 록키의 연대기'의 내용을 요약 밑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엉뚱상상_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