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90년대 우리나라는 홍콩영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성룡을 비롯한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 홍금보, 왕조위… 등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의 인기가 대단했었죠. 대부분 홍콩 느와르 영화가 사랑을 받았던 중에도 비주류 장르가 큰 사랑을 받기도 했는데요. 바로 ‘강시’ 영화가 그 대표격입니다. 저 역시도 수많은 강시영화에 빠져 살았었는데요.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와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많이 방영을 했고, 특히 홈비디오를 중심으로 어린이 중심의 마니아층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인기 있는 좀비의 조상격이라고 할 수 있는 강시는 팔을 앞으로 내밀고 통통 튀어가는 모습이 대표적이죠. 이 동작은 당시 모든 어린이들이 따라했었고, 영환도사로 대표되는 퇴마사의 부적 한 방에 꿈쩍도 못하는 모습에서 환호성을 지르곤 했습니다.
강시 영화의 고전, <강시 선생>의 한 장면
죽은 시체가 되살아난다고 해서 강시가 무조건 무서운 존재만은 아니었죠. <강시소자>나 <헬로강시>에서 보여준 귀여운 강시는 강시라는 존재를 본격적으로 친숙하게 만들었죠. 이후 <강시번생>, <귀타귀>를 통해 인간과 무서운 괴물로서의 강시의 본격적인 대결 구도를 만들어갔습니다. 이렇게 큰 인기를 끌며 우리에게 영원할 것만 같던 강시는 서양의 벰파이어와 늑대인간, 좀비 등에 밀려 기억 속 저편으로 사라져갔습니다. 이제 고전으로만 어렵게 구해 볼 수 있을 것만 같던 강시가 2013년 부활하게 됐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왜 지금의 기술로 강시를 탄생시키지 않는 것일까 하며 내심 강시 영화를 기대하던 중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찾아 보게 됐습니다. <리거 모티스(Rigor Mortis)>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영화에서 강시는 어떻게 다시 부활했을까요?
비주얼로 무장한 강시, 슬프고 무서운 영화 리거 모티스
강시 영화를 많이 봐왔던 사람들이라면 ‘전소호’라는 이름이 낯설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이름은 모르더라도 얼굴만 봐도 ‘아! 이 사람!’ 하며 반가운 웃음을 지을 수 있는데요. 주노 막 감독 주연의 리거 모티스에는 강시 영화의 레전드라 부를 수 있는 스타 군단이 출동했습니다. 전소호를 비롯한 진우, 그리고 지금도 홍콩영화에서 자주 만나는 오요한이 출연해 기대감을 더욱 높였습니다.
N.R.G 이성진 닮은꼴로도 잘 알려진 전소호...
2013년 개봉한 리거 모티스의 줄거리부터 설명해드리자면, 유명 영화배우였던 주인공(전소호)은 삶을 정리하기 위해 한 아파트를 찾습니다. 목을 매 자살을 하려는 순간 아파트의 원귀가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가고 근처에 살던 영환도사(진우)가 그로부터 원귀를 떼어 놓습니다. 이후 펑 아저씨는 실수로 계단에서 굴러 죽게 되고 그의 부인은 슬픔을 못 이겨 영환도사에게 부탁해 남편을 강시로라도 만들어 집 한켠에 간직하게 되는데요. 영화는 이 펑 아저씨가 깨어나 강시로 변하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합쳐져 하나의 스토리를 완성해갑니다. 강시 영화라 해서 단순히 강시와 영환도사의 대결을 그린 것이 아닌 점이 리거 모티스의 특징입니다. 지금까지 강시 영화에서는 한 번도 담지 못했던 삶에 대한 철학과 인간 사이의 애틋한 감정적 교류를 담았는데요. 어린 시절 보아온 강시 영화를 기대했다면 실망이 클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영화의 영상미가 매우 뛰어납니다. 현대적 감성의 영상을 통해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절제된 스토리를 멋지게 담아냈습니다. 또한 공포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답게 다소 잔혹한 장면도 종종 나오는데 이는 기술의 발달로 부활시킨 강시라는 존재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멋진 비주얼로 승화시키는 장치로 작동하게 됩니다. 일본 공포 영화의 전설로 남은 주온의 제작팀이 영상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영화의 비주얼과 분위기가 어떨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기대감도 갖게 만듭니다.
스릴과 공포와 함께 이와 반대되는 애절함과 안타까움, 비장함까지 담은 영화는 중국 미신을 활용한 오컬트적인 이야기를 담은 공포, 판타지 영화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강시가 영화의 주요 요소가 아니라는 점인데요. 하지만 후반부 나오는 강시의 모습은 확실히 남다릅니다. 강시 특유의 청나라 복장을 입고 퉁퉁 튀어다니며 벽을 타고 날아 다니는 등 원조 강시의 모습에 현대 영화 기술이 더해져 더욱 무시무시하게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강시의 비주얼에 비해 강시와의 대결을 그린 액션은 기대에 미치지 못합니다.
리거 모티스는 <귀타귀>에서 홍금보의 몸에 그리던 법력 글귀를 재현해 강시 영화의 전설로 남은 명장면을 새롭게 담았습니다. 이처럼 감독은 영화 곳곳에 오마주를 활용한 과거로의 회귀와 새로운 시도를 담아내고 있는데요. 이외에도 감독은 이전 강시 영화에서 자주 보던 모습을 장면 장면마다 삽입해 홍콩 영화의 아련한 추억을 되살리고 있습니다.
웃음기를 쪽 빼고 죽은 귀신부터 시작해 어둠과 공포, 광기, 감성을 담은 영화는 사실 강시라는 요소만 빼면 주온을 대표로 하는 J호러물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펑 아저씨가 계단에서 떨어져 죽는 장면이나 쌍둥이 귀신의 과거 등의 모습은 충분히 공포스럽고 영화의 몰입감을 높이지만, 주온의 중국어판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드는데요.
강시와 J호러가 만나 의외로 감성적으로 그려진 강시 영화 리거 모티스… 저와 동시대를 살았던 지금의 30대 남성들에게는 추억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화이자 새로운 형식의 중국호러물로 깊은 인상을 줄 것입니다. 50회 금마장에서 국제 비평가 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작품성도 갖춘 21세기 강시 영화는 결론적으로는 아쉬움과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개인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여담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전소호가 간직한 단체 사진에 故 임정영, 故 허관영이 등장합니다. 주온의 시미즈 다카시 감독이 강시 영화의 광팬이었기에 넣은 장면이라고 하는데요. 주인공 전소호와 옛 강시 영화의 팬들이라면 애잔함을 느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전소호가 영화 강시선생에서 만났던 스승과 친구가 세상을 떠나 액자 속에서 재회하는 장면이기 때문이죠.
사후경직(Rigor Mortis)이라는 뜻의 영화 리거 모티스. 현대적 감성으로 살아난 반가운(?) 강시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번쯤 볼만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또한 뱀파이어, 늑대인간, 좀비처럼 전 세계에 강시라는 미스터리한 존재를 각인 시키는 영화이기도 한데요. 그 전설의 시작에 서있는 영화 리거 모티스의 리뷰를 이쯤에서 마쳐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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