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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1등은 아니지만 영원히 기억되는 추억의 걸그룹 열전

90년대 혹은 2000년 초반 여자 아이돌이라 하면 가장 먼저 S.E.S와 핑클을 기억할 것입니다. 하지만 삼국지가 어디 위, 촉, 오만 있기에 가능했던가요. 유장이 촉을 내주고 도겸이 오나라의 기반을 다졌듯 물심양면으로(?) 대결을 펼쳤던 수많은 걸그룹과 솔로 가수들이 있었기에 군웅할거의 시대에 빛나는 별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아이돌 음악도 획일화 되고 컨셉도 거기서 거기이니 별 재미가 없지만, 적어도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나름의 독특한 컨셉으로 각자 이 시장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죠.


안타깝게도 대부분이 단명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우리나라 음악의 과도기적 흐름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던 걸그룹에 대해 오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틈새시장 공략 성공을 오래 잇지 못한 ‘샤크라(Chakra)’



샤크라는 단연 가장 눈에 띄는 그룹이었다


2000년 초반 걸그룹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샤크라는 S.E.S와 핑클이 아직 건재하던 그 시기 특이한 음색과 컨셉으로 공략해 성공을 거둔 몇 안 되는 사례입니다. 황보의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따라 할 수 있는 랩과 이니의 몽환적인 목소리, 그리고 팀의 얼굴마담이자 은은한 매력이 돋보였던 려원, 그리고 미스코리아 출신 중성적 매력을 갖고 있었던 또 한 명…(이름은 잘..죄송) 어쨌든 그들이 데뷔하며 선보인 ‘한(悍)’은 발표와 함께 대중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발표한 2집 ‘끝’과 이후의 ‘난 너에게’, ‘oh my boy’까지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2000년 데뷔 후 2005년까지 S.E.S와 핑클의 절대적 인기가 식던 시기에 일찍이 No.1으로 뛰어올랐습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샤크라도 어쩔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어쩌면 샤크라 지분의 70%는 차지하던 황보와 려원이 다른 길로 빠지면서부터였겠죠. 예능 프로그램과 아이돌의 연기가 공식처럼 되어가던 방송가의 흐름에서 황보는 예능에서 더 쉽게 볼 수 있었고, 려원은 연기자로 입지를 굳혀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아이돌 생태계라면 당연한 듯한 그런 모습이 그 시기에는 특별한 경우였고 결국 자연스럽게 그룹은 해체되고 말았습니다. 샤크라에 조금 더 의미부여를 하자면 현재 아이돌이 걸어가야 할 길을 그들이 제시했다고 할 수 있겠죠. 어쨌든 가요계의 과도기에 데뷔한 걸그룹 중에서는 가장 성공한 사례로 많은 대중들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샤크라는 1집 ‘한’과 2집 ‘끝’ 이후로 인상적인 음악을 보이진 못했다. 출처_네이버뮤직


뜨지 못한 게 이상한 그룹 ‘투야(To-ya)’


2000년 데뷔해 2002년 월드컵의 함성 속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그룹 ‘투야’는 비주얼과 실력 모두를 겸비해 제2의 S.E.S가 될 수 있는 아우라를 풍기며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탤런트로 데뷔해 인기를 끌고 있던 김지혜의 가수 데뷔는 그 자체로도 화제였고 멤버였던 안진경, 류은주의 든든한 뒷받침은 슈퍼스타의 탄생을 점치기에 충분했습니다.



제2의 S.E.S 탄생을 예감하게 했던 ‘투야’ 출처_네이버뮤직


하지만 기획사의 수틀린 방법 때문이었을까요? 일본에서 먼저 데뷔한 후 한국에서 정식 데뷔를 했지만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대중들은 이상하게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녀들의 데뷔 앨범인 ‘가’와 ‘봐’는 지금 들어도 그 음악 스타일이나 플로우가 무척 세련됐기에 투야가 해체한 뒤 수년이 지나고 명반이라는 입소문과 함께 뒤늦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이돌의 레전드 음반을 뽑아보자면 투야의 1집을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투야는 그냥 모든 가수들이 그렇듯 평범하게 데뷔 했으면 오히려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회자될 만큼 전설적인 그룹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투야 김지혜의 비주얼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와 같이 충격적이다. 출처_한국경제


투야만큼 아쉬운 그룹 ‘오투포(O-24)’


투야보다 이른 1998년 데뷔했지만 개인적인 기억 속에서는 뭔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그룹 오투포는 토익강사로 변신한 멤버 안미정의 소식이 들리면서 갑자기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입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첫 싱글 ‘뒤집어’를 발표하며 여리디 여린 4명의 소녀들이 힙합바지를 입고 격한 춤을 추며 자유를 외치던 모습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이어 발표한 ‘첫사랑’은 당시 많은 남학생들의 첫사랑을 자극하며 잔잔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여자 H.O.T라는 컨셉으로 등장한 O-24. 처음 컨셉과는 다르게 첫사랑만 남기고 떠났다.

출처_네이버뮤직


힙합을 컨셉으로 잡은 1집과 달리 2집에서는 3인 체제로 바뀌더니 갑자기 순수를 외치며 분위기를 바꿨는데요. 첫사랑의 달콤했던 여운을 잊지 못해서였을까요. 갑작스런 분위기 반전은 오히려 차별화 없는 그룹으로 만들며 걸그룹이 넘쳐나던 레드오션 시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투포 역시 비주얼과 실력에서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기에 일찍 사라졌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까운 사례 중 하나입니다.


비슷한 컨셉 에이~! 구분하기 귀찮아! 티티마(T.T.MA)와 파파야(Papaya)



이렇게만 보면 티티마와 파파야의 구분이 쉽게 가진 않는다. 출처_네이버뮤직


2000년 베이비복스의 컨셉을 다분히 노린듯한 5인조 여성그룹 ‘파파야’가 데뷔합니다. 주영훈을 비롯한 국내 최고의 작곡가들이 모였다는 홍보는 어느 정도 대중에게 먹히며 기대를 갖게 했는데요. 데뷔앨범인 ‘내 얘길 들어봐’는 상큼 발랄한 분위기와 흥겨운 리듬으로 나름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도 여름이면 간혹 흐를 정도로 노래 자체는 참 좋죠. 2집인 ‘사랑 만들기’ 역시 신나고 경쾌한 멜로디로 선전했습니다.


파파야가 등장하기 전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티티마’라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역시 5인조로 첫 번째 앨범인 ‘My Baby’로 어느 정도 대중에게 쉽게 다가갔던 그들은 2집 ‘Wanna be loved’로 1집에 이어 인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굴러온 돌인 파파야가 가만 있는 티티마에 의도치 않게 태클을 겁니다. 이름부터 뭔가 어감이 비슷한 파파야와 티티마, 그리고 5명의 멤버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헷갈려 하기 시작하죠. “소이가 티티마야 파파야야?”라는 사소한 질문은 인터넷 접속이 쉽진 않았던 그 시절 남학생들은 티티마파 파파야파로 갈라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너무 비슷한 컨셉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 음악은 그들이 두각을 나타내는데 장애물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콘텐츠가 좋더라도 경쟁력을 갖지 못하면 시장에서는 단순한 소비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평범한 것이 되다가 잊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 두 그룹의 모습은 돌이켜 떠올려 보면 조금 씁쓸하기도 합니다.


파파야와 티티마 멤버 중 지금 볼 수 있는 멤버는 티티마의 핵심 멤버이자 고스펙 가수로 유명했던 소이로 현재 ‘라즈베리필드’라는 인디 팝으로 새로운 음악 인생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연기자로 전향한 파파야의 황윤미, 강세정 정도만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장수 걸그룹의 역사를 써나가는 ‘쥬얼리(Jewelry)’


쥬얼리만큼 다사다난한 걸그룹이 또 있을까요? 성공과 실패 멤버 교체를 밥먹듯 하면서 인기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참 애매모호한 그룹으로 어쨌든 지금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박정아와 서인영, 이지현이 버티고 있던 쥬얼리 초창기는 전성기이기도 했습니다. 서인영은 초기 멤버는 아니지만, 어쨌든 본격적으로 대중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던 2집 앨범은 쥬얼리 역사상 최고의 명반이죠. 타이틀곡 ‘Again’과 후속곡 ‘Tonight’ 그리고 수록곡 ‘one summer night’과 ‘How Are You?’ 등 좋은 노래로 무장한 고품질 앨범은 그녀들을 일약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쥬얼리의 어제와 오늘. 현재 멤버가 오히려 이전보다 개성도 강하고 실력이 있음에도 좀처럼 안 되고 있다.

출처_네이버뮤직


이후 여름 대표 음악 ‘니가 참 좋아’ 등 대박은 아니더라도 중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앨범도 계속 발표하면서 오래도록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01년 데뷔했으니 햇수로만 무려 15년! 일본의 모닝구무스메와 같이 멤버 교체로 연명해가듯 이제 장수 걸그룹이 된 쥬얼리는 현재 모든 멤버가 초창기와 다르지만 지금도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이제 뭐 하나 터트려줄 때가 된 거 같 같은…)


쥬얼리와 나름의 라이벌 관계 ‘슈가(Sugar)’



아유미만을 남기고 떠난 슈가. 해체 후 오히려 멤버들은 자기 길을 잘 찾아가는 듯 하다. 출처_네이버뮤직


슈가를 대표하는 아유미는 당시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 캐릭터는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기에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처음에는 거의 아유미의 아유미를 위한 아유미에 의한 그룹이었던 슈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크게 기억나는 노래라고는 ‘Shine’ 정도로 4년이라는 나름 긴 활동 기간 동안 남긴 노래는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아유미에 집중된 스포트라이트는 멤버들간의 불화로도 이어졌다는 소문도 남기며 굉장히 부정적인 느낌만 줬던 달콤한 이름의 그룹 슈가는 오히려 해체 후 황정음의 활약이 빛이 났고 박수진은 먹방과 꿀피부로 그룹 때에는 보여주지 못한 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소속사빨도 가수 나름, 밀크(M.I.L.K)


브랜드의 가치는 그 자체만으로 신뢰를 준다는 데 있습니다. H.O.T, S.E.S, 신화, 보아로 이어지던 SM의 성공신화는 이제 그곳에서 나오는 가수는 자연스럽게 슈퍼스타가 된다는 환상을 심어줬습니다. 그런 성공신화를 이어갈 그룹으로 SM이 선택한 신의 한 수는 바로 ‘밀크’였습니다. 기존 SM과는 다른 청순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데뷔한 밀크는 S.E.S 이후 SM의 첫 여성그룹이기에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첫 번째 발표 곡인 ‘Crystal’은 문희준이 프로듀싱한 곡으로 대중의 반응도 꽤 좋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아 역시! SM이구나’ 할 정도였습니다.



청초한 컨셉으로 SM의 두 번째 걸그룹으로 주목 받았던 밀크. 출처_네이버뮤직


하지만 왜인지 이후부터 소속사에서 내놓은 자식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더군요. 컴백 하나 싶다가도 이후의 앨범 없이 해체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한 멤버의 무단 탈퇴 때문에 그룹을 이어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한 멤버는 생활고에 안 해본 알바가 없었다는 후일담을 말하기도 했죠. 


멤버였던 서현진, 김보미, 박재영, 배유미는 해체 후 연기자로 전향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원래 2집 앨범에 쓰이기로 했던 곡은 바로 소녀시대를 탄생시킨 ‘다시 만난 세계’라는 사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밀크와 다시 만난 세계도 얼핏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네요.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밀크가 다시 만난 세계로 크게 성공 했으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명곡을 남기고 어디로 사라지셨나요 ‘키스(kiss)’


멤버가 몇 명인지도 잘 모르지만 노래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남기고 떠난 3인조 그룹 ‘키스’는 비록 단 한 장의 앨범만을 남겼지만 ‘여자이니까’와 월드컵 가수 미나의 노래로 더 익숙한 ‘전화 받어’를 남긴 장본인들입니다. 사실 키스에 대해서는 뭔가 쓸 거리도 없습니다. 방송에서 활동을 한 것도 아니기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인데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내부적 사정으로 활동을 일찍 접었다고 하니 뭐 그렇구나 해야죠… 사실 걸그룹이든 보이그룹이든 명반 한 장만을 남기고 사라진 그룹들은 많지만, 키스의 '여자이니까'는 왠지 모를 아련함이 깃든 사운드로 지금 들어도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 있는 곡입니다.



신비주의 느낌이 가득한 키스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 출처_네이버뮤직


이외에도 친구들 중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저 혼자만 좋아했던 SM의 또 다른 걸그룹 ‘신비’와 자신들만의 음악 스타일을 확고히 이어나갔지만 소리 소문 없이 해체한 힙합 걸그룹의 대표 ‘디바(DIVA)’ 정도가 글의 말미에 또 생각이 나네요. 이야기 하면 끝이 없겠지만 가장 주요했던 2000년대 걸그룹을 다시 기억해봤습니다. 어쩌면 현재 아이돌들의 타산지석이자 온고지신이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은 저에게 지금도 많은 추억과 감성을 선물해주고 있기에 그립고 아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