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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상인 하루하루

부암동에서 무료로 즐기는 박노해 사진전, '께로티카'


이미지 출처 / 카페 '라' 갤러리 블로그(http://racafe.kr)



부암동은 홀로 멈춰버린 것 같습니다. 10년 전에도, 3년 전에도 지금의 모습 그대로, 어떻게 서울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옛 정취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을까요? 꼭 구름 너머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입니다. 하루 중 새벽처럼 동이 트기 직전의 조용함을 가진 부암동을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부암동 벽에 걸려있던 포스터의 일부


부암동은 골목이 아주 매력적인 동네이지요. 그 좁은 골목골목 마다 신기하게 집과 가게들이 들어 서 있습니다. 작년 부암동 담벼락에는 이런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습니다. 단지 집 사진들을 붙여 만든 것이 꼭 부암동을 닮아 신기해했죠. 


길을 따라 주욱 올라가다가 '라' 카페 앞에 멈춰섰습니다. 함께지만 얼굴 모르는 앞과 옆의 사람들도 저랑 함께 건물을 멀뚱멀뚱 쳐다보았죠. 참 기분 묘했습니다. 생판 처음보는 사람들과 마음이 통했다는 게 말이죠. 나중에 알고보니 공짜라는 게 통했더군요. 하여튼  제가 놀란 이유는 박노해 시인의 사진전을 한다는 저 현수막 때문이었습니다.


 


박노해 사진전은 비영리 사회 단체인 '나눔문화'에서 운영하는 '라' 카페에서 전시되고 있습니다. 작년부터 꾸준히 다른 나라의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더군요. 


 

    2012.04.16 - 07.27  '구름이 머무는 마을'

    2012.08.03 - 10.31  '노래하는 호수'

    2012.11.02 - 2013.02.27  티베트 사진전 '남김없이 피고지고'

    2013.03.01 - 2013.07.10  안데스 사진전 '께로티카'



잠시 그의 작품을 감상해보실까요?


   

아랫마을 장터로 가는 청년 / 잉카시대부터 내려온 쟁기질

   

내가 걷는 길 / 께나를 불며 만년설산을 넘어가다


이미지 출처 / 카페 '라' 갤러리 블로그(http://racafe.kr)



박노해 시인의 안데스 사진전에는 범접할 수 없는 자연과 노동이 오묘하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광활함 속에 사람이 순응하며 사는 삶을 노동이라는 아주 작은 인간의 몸짓으로 표현했죠. 그리고 사진 속 인물들에게서는 행복과 건강이 묻어납니다. 아마도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았던 박노해 시인의 이상적인 노동의 모습을 담아내었나봅니다. 문명에서 벗어나 우울과 욕심에 찌들지 않은 삶 말이죠. 그래서 사진을 보고 있자면 얼굴 가득 미소가 절로 번집니다. 


전시관의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박노해 시인의 메세지 사진을 카메라에 담아내며 따뜻한 봄날 부암동 나들이를 마무리합니다.


 





     박노해 시인

'해받는 동자들의 방을 위하여'


1957년 전남 함평군에서 태어나 고흥군 벌교읍에서 자랐다. 

16세에 상경하여 선린상업고등학교(야간부)를 졸업한 후 노동자로 일했다.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내어 잊혀진 계급이던 천만 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다. 이후 '반국가단체 수괴'라는 죄목으로 사형이 구형되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옥중이던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 1997년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펴냈다. 

1998년 8월 1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출소하였고,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한 채, 홀로 세계의 빈곤 지역과 분쟁 현장을 돌며 평화 운동을 한다. 

2010년에는 해외 분쟁 지역에서 촬영한 사진을 모아 <라 광야>전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전을 열었고, 지금은 비영리 사회 단체 '나눔문화'와 함께 부암동 카페'라'에서 무료 사진전을 열고 있다.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