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면
바람은 공기에 흐름이 생겨서 움직이는 것을 얘기합니다. 과학적인 정의죠. 하지만 바람은 사람에게 무수히 많은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어떤 때는 아름다운 기억을 담아 주기도 하고, 다른 어떤 때는 아픔을 낳기도 하죠. 그래서 사람들은 바람에 대한 기억이 각자 다릅니다.
하지만 바람을 싫어하는 사람보다 바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까닭은 누구나 한 번쯤 바람이 안겨준 소중한 여유를 만나봤기 때문이죠. 햇볕이 점점 강해지는 요즘 같은 초여름 날씨에 그늘에서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은 뺨과 목을 지나면서 시원한 선물을 안기고 갑니다. 살랑살랑 찾아와 가볍게 두드리고 돌아가는 바람을 떠올리면, 잠깐이라도 미소가 떠오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죠. 글을 쓰고 있는 필자가 바람을 유독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바람을 참 좋아했답니다. 그래서 바람이 불 때면 가끔 서서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곤 했죠. 바람에 담긴 향기가 좋을 때도 있었고, 뺨에 가만히 머물다가 지나가는 설렘에 미소를 가득 담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바람이 좋았죠. 그러다 보니 바람에 이끌려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경우가 늘어갔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바람을 따라가다 보면, 말로는 전하지 못할 아름다움에 만나고 돌아올 때가 많았죠. 지난 주말에도 바람이 불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바람이 불어오는 그곳으로 함께 가실까요?
한택 식물원은 어떤 곳?
바람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 곳은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한택식물원'이었습니다. 안성시에 사는 대학 동기가 근사한 곳이 있다며 소개해준 곳이죠. 안성시와 용인시의 경계에 있는 곳이어서 대중교통보다는 차가 있으면 편한 곳이지만, 이곳에는 '아름답다!'라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가득한 곳이랍니다.
이곳은 1970년대 우리나라의 자생식물들이 잡초라 불리며 홀대받던 시기에 개인 식물원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식물원을 만든 이택주 원장은 당시에 사람들이 열광했던 쭉쭉 뻗은 고속도로와 고층 건물보다는 우리나라 고유의 자생식물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희귀하고 멸종 위기에 놓인 식물을 찾아 대량 번식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자생지를 복원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또한, 토양에 맞는 신품종을 개발하고 토종 꽃으로 화단을 조성하죠. 30여 년 가까이 그렇게 땀을 흘린 결과 지금은 9.000여 종의 식물이 모여 있는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식물원을 만들었답니다.
꽃은 색을 가지고 태어나 향기로 남는다
입구를 지나면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바람에 실려온 잔잔한 꽃향기였습니다. 사랑을 담고 있었고 행복이 있는 향기를 맡고서 미소가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잔잔한 미소를 띠면서 몇 걸음 걷지 않아서 향기를 내는 당사자를 찾았습니다. 다섯 개의 잎을 나란히 내어 하얀색으로 채운 꽃은 꽃대의 분홍색과 잎의 녹색과 어울려 연인이 있다면 선물하고 싶을 정도였죠. 다시 몇 걸음 옮기니 이번에는 짙은 분홍색의 꽃들이 허리를 세운 채 피어 있고 그 사이로 노란색의 꽃이 수줍은 듯 인사를 했습니다. 서로 다른 색이 만나서 더욱 눈을 뗄 수 없게 하더군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꽃들이 너무 많아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끝날 줄 몰랐답니다.
바람을 맞아 살랑살랑 흔들리면서 인사를 하는 작은 꽃들이 가득했죠. 어떤 꽃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 같았고, 다른 꽃은 반갑게 웃는 것 같았습니다. 바람은 그들에게 저를 소개하듯 꽃과 꽃 사이를 지나갔죠. 바람이 길을 안내하고 길마다 손을 흔들며 맞이하는 다양한 색의 꽃들이 있으니, 한동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꽃이 주는 선물에 가만히 떠오른 생각 하나는 '꽃들이 자신만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 듯, 사람도 자신만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였죠. 어쩌면 바람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꽃들은 저마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꽃들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식물원에 가득한 녹색의 비단 위에 수를 놓았습니다. 몇몇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이 있더군요. 사랑하는 연인에게 전해주고 싶은 분홍빛의 하트를 가지고 방울처럼 핀 '금낭화', 매의 발톱을 닮아서 이름 붙여진 '노랑매발톱', 짙은 분홍색의 꽃들 사이로 고운 노란색으로 시선을 사로잡던 '황매화' 등 기억하기 쉬운 꽃들은 기억했지만,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꽃 이름은 기억이 잘되지 않더군요. 그저 눈으로 향기로 기억에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들어 카메라에 담았던 꽃들을 옮겨봅니다.
자연 그대로의 쉼터 속 산책
곳곳에 피어 있는 꽃들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아름다움 못지 않게 시원한 느낌의 산책로도 바람이 안내해줬습니다. 가만히 걷다가 문득 돌아보면 그곳에는 눈을 편안하게 해주는 녹색의 빛이 있었죠. 돌을 의자 삼아 앉아서 쉴 때면 작은 풀벌레 소리와 함께 바람이 연주를 합니다. 눈을 감고 귀 기울여 들으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졌답니다. 근심, 걱정, 상처 등 일상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많은 감정을 덜어 낼 수 있었죠. 자연에서 그대로 머물고 싶다는 소망을 할 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누군가와 나란히 손을 잡고 걸으면, 서로에게 따뜻하고 여유 있는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이었죠.
누구나 삶의 휴식이 있어야 하듯
살면서 휴식이 없이 살 수 없습니다. 그만큼 휴식이라는 것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죠. 이런 휴식을 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꽃의 노래도 듣고 녹색의 편안함에 물들었다 올 수 있다면, 그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요? 하루쯤 자신에게 휴식을 선물하시러 한택식물원으로 떠나보세요. 그곳에는 바람이 불어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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