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상상 블로그 라이프

필사적 필사, 타인의 욕망 옮기기

커피한잔,생각 한모금

토마스 스턴스 엘리엇(T. S. Eliot), <황무지>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보다 나은 예술가
에즈라 파운즈에게

 

  

 

 

여기, 마세라티와 포르쉐가 있습니다. 벤틀리도 있고, 재규어가 있습니다. 아름답고 빠르며, 쾌적하군요. 모두 제 소유입니다만, 언제부터 가지고 있던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애니웨이, 제 것이기에 차에 탑니다. 속도에는 큰 흥미가 없는 터라,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재규어를 고릅니다. 재규어는 일단, ‘재규어’라는 어감이 좋고, 안락합니다. 야성적이고 매끄럽네요. 악셀을 천천히 밟고, 핸들을 돌립니다. 유럽까지 가려면, 운전이 피곤할 것 같아 서행합니다. 빨리 도착하고 싶다는 급한 마음이 아니거든요.

 

 

 

 

판문점에 잠시 멈춥니다. 판문점은 무채색이지만, 예상보다 딱딱하거나, 먹먹한 느낌은 아닙니다. 판문점에 새로 생겼다는 미니스톱의 문을 엽니다. 담배를 구입하고, 하이네켄 네 캔을 구입합니다. 연해주나 블라디보스톡 부근에서 목이 마를 수도 있으니까요. 이번 여행은 생각보다 좀 더 길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욕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타인의 욕망을 베끼곤 합니다. 욕망의 대부분은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것들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졌군요. 잠시 몽골의 홉스골 호수에 멈춥니다. 호주머니에서 백야를 꺼냅니다. 적요롭네요. 텐트를 꺼내고 모닥불을 피웁니다. 연기가 나고, 주위에 한 무리의 늑대가 다가오는 게 느껴집니다만, 몇 마리인지 분간은 되지 않습니다. 저기 희미한 것은 순록인가요. 잠시만 책상을 펴보겠습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베트남>

 

 

여인이여, 그대 이름은 무엇이냐?  몰라요.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디 출신인가?  몰라요.
왜 땅굴을 팠지?  몰라요.
언제부터 여기 숨어 있었나?  몰라요.
왜 내 약지를 물어뜯었느냐?  몰라요.
우리가 당신에게 절대로 해로운 것을 하지 않으리라는 걸 아는가?  몰라요.
당신은 누구 편이지?  몰라요.
지금은 전쟁 중이므로 어느 편이든 선택해야만 한다.  몰라요.
당신의 마을은 아직 존재하는가?  몰라요.
이 아이들이 당신 아이들인가?  네, 맞아요.

 

 

제가 베끼고 싶은 욕망은 폴란드인의 것이였습니다. 영혼의 불침번,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그녀의 사상적 궤적을 따라가다보니 알파벳이 자연스럽게 손에 익었습니다. 필사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지만, 필사를 하며 언어를 배우고, 호수의 야간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불어와 영어도 손에 익었습니다.

 

 

아르튀르 랭보(Arthur Rimaud), <감각>

 

여름 야청빛 저녁이면 들길을 가리라,
밀잎에 찔리고, 잔풀을 밟으며.
하여 몽상가의 발밑으로 그 신선함 느끼리....
바람은 저절로 내 맨머리를 씻겨주겠지.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계집에 데려가듯 행복하게, 자연 속으로.

 

 

토마스 스턴스 엘리엇, <황무지 V>

 

 

 

 

이제, 타고 왔던 재규어를 호숫가에 버립니다. 말이 한 마리 다가왔거든요. 승마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만, 같이 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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