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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 그리고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시집들

커피한잔,생각 한모금

영화 <동주>, 그리고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시집들의 재출간


 

책 사모하는 사람들은 책의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갖고 싶어 합니다. 마음은 내용이고, 몸은 장정입니다. 이미 마음을 얻었건만, 도무지 만족하는 법이 없습니다. 말끔히 새 표지를 입은 모습을 보노라면 전혀 만나본 적 없는 이성을 대하듯 전신이 달뜨곤 합니다. 기어이 같은 마음을 두 번, 세 번, 네 번 갖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합니다.

 

이런 이들을 도대체 정신 못 차리게 하는 사태가 요즘 벌어지고 있습니다. 서점에 나가 보니 과연 아찔할 정도입니다.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늘어선 그 수많은 이름들, 몇 번이고 사랑을 나누었던 그 그리운 마음들. 윤동주, 백석, 김소월, 정지용, 미야자와 겐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 루이스 캐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

 

시인 윤동주와 문우(文友) 송몽규를 그린 영화 <동주>에는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의 출간 배경도 설명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 몽규와 함께 옥사한 동주는 끝내 자신의 첫 시집은 물론, 해방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 작은 시집 한 권에 일제시대를 살다 간 어느 문청(문학청년)의 열병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작은 시집 한 권이 시인 동주의 생입니다.

 

 

 

신연식 각본,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 포스터

 

 

윤동주 사후 세상에 나왔던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가 당시 초판본 그대로 올 1월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표지 디자인뿐 아니라, 본문 구성 역시 예전 모습을 복각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세로쓰기, 독음을 달지 않은 한자어, 활판인쇄 특유의 잉크 번짐 등. 영화 <동주>를 관람하신 분들이라면 서점에서 이 책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을 테지요. 스크린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공유했던 한 문청의 다소곳한 먹먹함이,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시집으로 보다 직접적으로 구체화되는 기분입니다. 손에 쥔 시집 한 권이여, 손 안의 시인의 삶이여, 청춘 동주여-

 

 

2016년 1월 출간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소와다리 출판사)

출처: 알라딘(아래 출처 동일)

 

<동주>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또 다른 시인 두 명도 등장하거나 언급됩니다. 윤동주가 전심으로 흠모했던 정지용, 몽규가 동주를 위해 호기롭게 구해다 준 시집 <사슴>을 쓴 백석. 이 두 시인의 시집들도 조만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만날 수 있다고 합니다.

 

독자들로서는 든든한 낭군님을 얻은 듯, 우렁각시라도 만난 듯 신나기만 합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사슴>, 이 두 권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펴낸 곳은 ‘소와다리’라는 1인 출판사입니다. 번역, 편집, 디자인, 홍보 등 일련의 전 과정이 오롯이 한 사람의 몫이라는군요. 지난해 11월 첫 복각본 시집을 선보였는데, 김소월의 <진달래꽃>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은하철도의 밤>, <나생문>, <인간실격>,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어린 왕자> 등의 해외 소설들을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으로 제작한 바 있습니다. 정지용 시집은 ‘그여름’이라는 출판사에서 3월 중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소와다리 출판사에서 지난해 나온 김소월 시집 <진달래꽃>, 올 3월 출간 예정인 백석 시집 <사슴>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윤동주 詩 「길」 마지막 두 행

 

책 읽는 이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생활에 치이고 일상에 쫓기다 시나브로 “잃은 것을 찾는 까닭”으로 우리는 책장을 넘기지 않던가요. 복각본 시집들은 우리가 그새 잊었거나 잃었던 시심(詩心)을 소생시켜주는 듯합니다. 초판본이 나왔을 당시의 시대상과, 그 시절 시인이 희붐하게 맞이했을 건필(健筆)의 새벽이 손에 닿을 것만 같은 착각도 일어납니다. 돈 버는 일이 최고라 말하는 세상에서, 물론 돈을 벌기 위해 기획된 결과물이겠으나, 그럼에도 복각본 시집은 어엿하게만 보입니다. 저것을 갖고 싶다는 물욕보다, ‘저것을 잊고 살았구나’ 하는 부끄러움을 이끌어내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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