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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퓰리처 사진전을 통해본 잘 찍은 사진들의 공통점

최근 예술의 전당에서 퓰리처 사진전이 열리고 있죠.
모 신문사에서 후원하는지, 제가 읽는 신문에서는 이틀에 한 번씩 관련소식이 실리곤 합니다.

예술의 전당을 찾지 않더라도 퓰리처 사진전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제가 자주 찾는 모 게임 사이트인데요. 정리가 잘 된 것 같아 사이트 주소를 남깁니다.
http://www.ruliweb.com/ruliboard/read.htm?main=cmu&table=cmu_yu02&num=498869

저는 예전 대구에 있을 때 퓰리처 사진전을 한 번 본적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명작들이 있었지만, 제가 베스트로 꼽는 사진은 <포로의 귀환>이라는 1974년 수상작입니다.



<포로의 귀환>
Slava Veder 촬영. 캘리포니아 트라비스 공군기지에서 베트남 전쟁포로였던 로버트 스텀이
1973년 3월 18일, 가족들과 상봉하는 광경을 잡아내었다.

정지된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영상을 보는 듯한 생동감이 넘칩니다.
디테일하게 살펴보자면 이 사진의 주인공은 두 팔을 활짝 벌린 여성과, 뒷모습을 보인 귀환병입니다.
여성은 어찌나 반가운지 막 뛰어오다가, 남자를 안기 위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속도를 줄이고 있네요.
그녀가 뛰어왔다는 것은 뒤따라 뛰어오는 소녀를 통해 알 수 있군요.
그 뒤로 아내와 아들로 보이는 가족들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따라오고 있습니다.
100마디 말보다 이 사진 한장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네요. 무려 40년 전의 사진인데도 저에게도 그 절절한 심정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다음 사진도 참 좋아합니다.




<믿음과 신뢰>
워싱턴 데일리 뉴스의 William C. Beall 촬영. 두살배기 어린아이가 거리의 퍼레이드에서 안으로 걸어가려는 걸
경찰이 다정하고 정중한 태도로 말리는 아름다운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제가 이 사진에서 주목한 것은 주인공인 경찰관과 아이가 아닌, 뒤에서 이 모습을 흐믓하게 보고 있는
시민입니다. 두 주인공만으로도 사진은 완성될 수 있지만 아마 그랬다면 이 사진은 그저 아름다운 사진에 불과했을 겁니다.
뒤에서 이를 바라보는 시민을 통해 제목처럼 흐믓한 분위기가 전해지는 것이지요.


현장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
하나의 사건이 있을 때, 그것만으로도 좋은 사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타인의 시선이 추가될 때 사진은 '미장센'이라는
효과를 더하게 됩니다. 사진의 구조가 더욱 완벽해 지는 것이죠.

앞서 <포로의 귀환>에서는 뒤에 서 있는 가족들이, <믿음과 신뢰>에서는 시민이 바로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장센
프랑스어로 ‘연출’을 의미한다. 희곡에는 등장인물의 동작이나 무대장치, 조명 등에 관한 지시를 세부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하여 각본의 내용을 통일적이고 효과적인 형상()으로 만들어 무대에서 상연하는 작업을 말한다. 따라서 연출가는 희곡의 각 장면 또는 각 국면의 미장센을 결정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자, 그럼 이 '타인의 시선'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최근 사진으로 살펴볼까요?



<연꽃 담기>
(서울=연합뉴스) 임헌정 기자 = 18일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에서 시작된 `제8회 서울연꽃문화축제`를 찾은
시민들이 연꽃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2010.7.18

이 사진에서 가운데 있는 제 3자의 모습을 뺀다면 사진이 어떻게 될까요? 연꽃을 찍는 촬영자의 모습과 연꽃만으로도
물론 <연꽃 담기>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사진으로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제3자의 시선이 더해짐으로써
사진은 더욱 풍성해보이고, 이른바 '객관성'을 가지게 됩니다.

즉, 사진을 찍는 촬영자의 기분이 제3자의 표정을 통해 드러나는 겁니다. 그로 인해 '이 사진을 보는 사람도 이런 기분을
느꼈으면 좋겠다'라는 것을 은연 중에 드러내는 것이지요.


사진을 찍다보면 이런 문제에 부딪힙니다. 잘 찍긴 한거 같은데... 왠지 모르게 심심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바로 이 '제3자의 시선'이라는 미장센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진을 그리 잘 찍지 못합니다. DSLR카메라를 사용하면서도, M모드도, A모드도 아닌 P모드로 찍은 지가 수년째입니다.
하지만 저는 사진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적인 면이 아닌 '이야기를 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을 무슨 이론으로 정립하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잘 찍은 사진을 보다보니 이런 공통점이 있다고 느꼈을 뿐이지요.

예쁘고 잘 찍은 사진이지만 왠지 모르게 심심하고, 흐리고 투박하지만 왠지모르게 마음을 흔드는 사진이 있습니다.
사진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한계에 부딪히신 분들, 오늘부터 사진에 '이야기'를 담아보는 것은 어떠세요?
그럼 사진이 훨씬 재미있어질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