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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지나간 가을, 당신은 어떻게 기억합니까?

이제 2010년의 가을도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TV 기상정보에서는 최근 며칠 동안 계속, '가을 날씨를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주말'이니 '곧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될 거'라는 둥 어서 가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려는 듯 부쩍 '추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수능 시험일이 되면 괜찮던 날씨도 추워지기 십상이었는데, 올해는 수능이 며칠 늦춰졌음에도 별 다른 추위가 없었지요. 

가을이 막바지로 접어들어 이제 곧 시간 너머로 물러나고 본격적인 겨울이 올 건데, 추위가 갑자기 엄습하다보면 지나간 가을이 더 그리워지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나간 가을, 당신은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가을의 풍경은 아름답습니다.
아니 처량합니다.
아니 서글픕니다.
아니 외롭습니다.

사람마다 다를테죠. 각자가 처한 조건과 상황에 따라서도 다를테고, 감정상태에 따라서도 다를테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지에 따라서도 다를테죠. 

그리고 한 사람이 꼭 가을을 하나의 기억으로 남겨두라는 법도 없을 겁니다. 



가을 어느 날 서울 상암의 난지도 하늘공원의 풍경입니다. 

기울어져 가는 가을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노랗게 물들어가는 저 억새는 지는 해에게 제 몸기운을 조금씩 조금씩 건네주며 끝내는 바싹 말라들어 갈 것입니다. 

저 무성한 억새잎과 하얀 털을 가득 단 억새가지가 앙상하게 대만 남길 때쯤이면 이제 매서운 바람만이 없어져 버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기억하게 할 것입니다.

가을 늦은 오후 석양빛에 물든 억새를 기억에 남긴다면 아마도 그 가을은 뭔가 쓸쓸한 기운을 남기고 가지 않을까요?



또 다른 가을 어느 날 북악산에서 담은 풍경입니다. 

담벼락을 타고 가을이 흘러갑니다. 마치 여름을 몰아내듯 빨갛게 물든 담쟁이 이파리가 오래된 산성의 벽을 타고 붉은 색을 더해갑니다. 

지겹도록 더웠던 여름을 몰아낸 강렬한 가을의 붉은 색이 인상에 깊이 남았다면, 아마도 당신은 지나가는 가을의 끄트머리를 잡고 놓치기 싫어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서울 어느 도심에서 만난 은행나무와 그 가지에 매달린 은행잎입니다. 

정말 단 하나 남은 은행잎이었죠. 
때 마침 하늘엔 둥근 보름달이 떴고, 그 아래 이제 곧 떨어질 준비를 하는 마지막 잎새를 보면, 그리고 그 잎새마저 다 떨어지고 나면 곧 겨울이 올거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면 가을은 인생을 관조하게 해줄지도 모르겠습니다. 

봄에 조그만 초록색 잎으로 시작했다, 뜨거운 여름 짙은 녹색잎으로 건강함을 자랑하던 은행잎이 온 몸으로 한해를 살고, 이제 길바닥에 나뒹굴게 될 운명을 남겨놓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면 우리네 인생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뭔가 숙연함을 느끼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우리는 또 압니다. 겨울을 보내고 나면 저 은행나무에서 다시금 연초록의 자그마한 잎새가 돋아날 것을. 

지나가는 가을은 보내주고, 겨울을 맞이해야겠습니다. 
추운 겨울 서로 따뜻함을 나누며 이겨내다보면 또 어느새 봄은 오겠지요. 
지금은 그저 겨우살이 준비에 충실해야겠네요.
모두의 겨울이 따뜻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