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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쓰임이 다하면 버려지게 마련이겠지만



언젠가 서울의 어느 산동네 맨 꼭대기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꼭대기 위에 올라 서울의 멋진 풍광을 담으려고 했었지요. 

그런데 그 꼭대기에서 커다란 곰인형 하나가 쓰레기로 버려진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 옆에는 또 커다란 여행 가방과 서류 가방이 버려져 있었고, 군데군데 헤져버린 간이용 매트도 같이 버려져 있었습니다. 
진짜 쓰레기들과 함께. 

저 모습을 보고 굉장히 쓸쓸했답니다. 

한때는 어느 누군가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을 커다란 곰인형이 지저분한 산동네 골목 한 모퉁이에 쓰레기들과 함께 버려져 있는 모습이라니. 한때는 누군가의 품을 충만하게 채워줬을, 그 이의 얼굴에 웃음 가득 머금게 했을 커다란 곰인형이 길바닥에 버려져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라니.

저 곰인형은 때가 잔뜩 낀 채로 더러운 모습이긴 했지만 봉제실밥이 터져 너저분하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사랑을 받다, 쓰임이 다했기에 저렇게 버려졌겠지요. 

여행가방도 마찬가지. 
한때는 누군가의 여행길에 동무가 되어 즐거움을 함께 했겠지요. 

하지만 시대의 유행에 밀려, 그리고 스스로 낡아 주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겠지요. 

쓰임이 다 하면 버림을 받게 마련인가 봅니다. 
아무리 사랑을 받았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래서 또 다들 안간힘을 쓰나 봅니다. 
버림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이 아직 쓰임새가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런 생각을 하니 더더욱 쓸쓸해졌지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세상은 또 그렇게 흘러가고, 그 세상 속에서 모두들 치열하게 살아야 되는 것을.


그날밤 꿈을 꾼 것 같아요. 

저 커다란 곰인형이 온몸에 낀 때를 말끔히 벗겨내고, 저 커다란 여행가방을 손에 끌고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꿈에서 본 것 같아요. 저 곰인형을 얼굴엔 해맑은 미소가 담겨 있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