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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남자는 늑대다? 영화 '늑대소년'에서 본 숨겨진 진실은?

내가 늑대소년을 볼 수밖에 없었던 사소한 이유

 

평소에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 아닌 필자는, 영화관과는 수년만에 재회한 어색한 동창과도 같은 다소 애매모호(?)한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영화를 볼 기회가 생겼는데, 막상 낯선 영화관에서 그저 그런 영화를 보려고 하니 무슨 영화를 볼 지 고민이 되었다.  열심히 영화 리뷰사이트를 서핑하며 고민하던 찰나,  영화 '늑대소년' 시사회를 다녀온 어떤 블로거가 작성한 '소소한 재미와 함께 아련한 감동을 함께 하면서 보는 내내 즐거웠다'는 짧은 리뷰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예고편을 본 블로거들에겐 혹평이 가득했지만 시사회를 다녀온 블로거들에겐 늑대소년을 찬양하는 기이현상까지 일어나게 됐으니.. 도무지 정체를 감잡을 수 없었던 늑대소년 영화의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직접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느꼈던, 지극히 주관적인 필자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 주의: 늑대소년을 안 봤다면, 혹은 나중에라도 볼 예정이라면 스포일러성 내용에 주의하시길 바람.

 

 

< 출처: 영화 '늑대소년' >

 

과거와 현재의 두 이야기, 그렇게 철수와 순이는 다시 만났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과거'와 회상이 끝나고 다시 짧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현재'로 나뉘게 된다. 과거는 순이와 철수가 사랑하게된 이야기와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재는 세월이 흘러간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세월이 흐른 현재 이야기에선 순이가 할머니가 되어 철수와 함께 지낸 곳을 다시 찾게 된다. 이젠 지나간 추억이라고 생각한 순이였지만, 추억의 그 곳에서 한 사람만을 생각하고 추억하며 살고 있는 철수를 만나게 된다. 순이는 철수에게 고맙고 미안한 감정들이 복받쳐 눈물이 흐르는 장면을 보면서, 감격스런 재회장면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반면 20분 정도의 짧지 않은 마지막의 러닝타임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많은 생각과 더불어 해피엔딩으로 이어지는 결말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에겐 지루하다면서 이른바 ' 억지감동' 이라는 말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엔딩크레딧이 등장하면 극장의 조명들도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하는데, 관객들의 발걸음을 잡는 장면이 또 있다. 바로 엔딩크레딧과 함께 보여지는 '보너스 엔딩씬'이다. 순이가 돌아가고 혼자 눈사람을 만드는 철수의 모습이 비춰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혼자가 되어서도 사랑한 사람을 추억하는 장면이라 해석할 수 있고, 순이와 영원한 이별을 다짐하는 장면일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니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 결말에 어떤 생각이 들던지 본인이 생각한 엔딩이 바로 늑대소년의 '열린 결말'이란 뜻이다.

 

 

각 배우들의 열연에 놀라다

 

 

동물을 연기한다는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고 힘든 배역일 것이다. 사람 연기도 힘든 와중에 동물이라니...  그런 의미에서 배우 송중기의 늑대소년 연기는 가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철수가 음식들을 마구 먹는 장면(이 장면을 보고 배가 고플 지경이었다)부터 으르렁거리는 장면 등 철수 역할을 맡았던 송중기의 연기력은 신선한 충격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 필자가 꼽은 명장면 중 하나 '쓰담쓰담' >

 

배우 박보영도 순이 캐릭터의 소녀감성을 아주 잘 표현했다. 철수와 순이, 늑대소년과 병약한 소녀... 서로가 닮을래야 닮을 수 없던 둘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교감하는 과정을 짧고 굵게 보여주고 있었다. 하이라이트의 경우, 감정정리 씬은 짧지 않고 배우들의 연기는 캐릭터의 감정이 생생하게 와닿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뛰어났다.  

 

늑대소년을 연출한 조성희 감독은 두 배우의 특징을 잘 살려서 극 중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모습을  잘 나타냈다고 생각한다. 극 중 등장한 악역도 너무 과하지 않은, 주인공 앞에서만큼은 한 없이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선이 조연에게 쏠리지 않고 주인공의 감정에 집중하기 쉬웠던 것 같다. 또한, 배우들이 맡은 바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면서 더욱 빛이 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늑대소년에서 감독이 보여주고자 했던 모습은?

 

 

조성희 감독의 또 다른 숨겨진 의도는 무엇일까? 필자는 여기서 동물과 사람을 오가는 늑대소년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보통 '늑대' 는 야성적인 면이나 무리지어 다니는 습성때문인지 음흉한 남자를 빗대어 말하는 데 쓰이고 있다. 

 

과연 늑대가 이런 모습들만 보여주고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알려진 뜻과는 반대로 늑대는 일생에 한 배우자만을 두고 배우자가 죽으면 무리에서 나와 남은 일생을 혼자 보낸다. 사람이 다가가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고 하며, 사냥을 할 때도 무리에서 제일 약한 상대을 공격하는게 아니라 무리에서 제일 강한 상대를 사냥한다고 한다. 약한 자는 괴롭히지 않고 강한 자와 싸우는 용맹함, 먼저 공격하지 않는 순함. 개인적인 생각으론 조성희 감독은 늑대의 숨겨진 진실을 영화 속의 메세지에 내포시켜 무의식에서의 늑대에 대한 이미지를 전달코자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알고 있어요. 소년이 늑대인간으로 변할 때 모습이 후레쉬맨 같다고 말하기도 하시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저는 관객 분들이 봤을 때 소년의 모습이 털로 뒤덮인 징그러운 캐릭터이길 바라지 않았어요. 어느 정도 사람의 이목구비가 그대로 있고, 약간의 로맨틱한 모습이 남아 있길 바랐거든요. 관객 분들이 어떻게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제 뜻이 온전히 전해졌길 바랄 뿐입니다. 다시 하라고 해도 그럴싸한 괴물의 형체를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 조성희 감독과의 인터뷰 中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도 사람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실험체로 변형된 몸 때문에 사람의 모습과 늑대의 모습 두 가지를 동시에 갖게 된 철수(송중기 역)를 보면서 전체적으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철수를 보듬어주는 순이(박보영 역)의 모습을 보면서 제일 먼저 느낀 점은 늑대소년 영화는 모두의 여린 감성을 조금씩 자극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감성코드는 '아이같은 순수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늑대와 똑같은 인생을 살아온 철수가 사람의 문화에 하나씩 적응하고 변해가는 과정에서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발견하게 된다.

 

< 늑대소년 OST '철부지' - 존박 >

 

자, 그럼 극장에서 오순도순 사이좋게 영화를 보던 커플들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처음엔 곳곳에 숨어있는 한국적 정서와 그에 맞는 웃음코드가 나오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중반부까지는 철수가 순이를 만나면서 사람으로서 생활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서투른 모습들에 많은 사람들이 웃으면서 재미있게 보곤 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순진무구한 철수가 공공의 적이 되면서 무거운 분위기의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하는데, 여성들은 영화에 극도로 집중하기 시작했고 남성들은 감정이입이 안되서 지루해보이는 모습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절대 커플들을 염탐하기 위해 늑대소년을 극장에서 본 것은 아니다).

 

헤어짐과 이별을 거듭한 끝에, 끝내 해피엔딩도 아닌 새드엔딩도 아닌 여운을 남기는 결말로 늑대소년의 화려한 막은 끝이 났다. 하지만 영화관에 불이 켜지자마자 이게 무슨 일인가! 출구로 바삐 발걸음을 옮겨야 할 사람들이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많은 여성들의 눈물바다가 됐기 때문. 남자친구 입장에선 우는 여친을 물끄러미 바라만 볼 순 없는 법. 챙겨주고, 위로해주고, 손수건까지 챙겨주는 장관이 펼쳐졌다. 결말부분에 폭포처럼 쏟아졌던 눈물에 번진 화장을 고치고, 훌쩍거림이 멎고서야 도망가는 듯한 빠른 발걸음이 이어지곤 했다. 그제서야 아는 여동생이 얘기해준 이야기 하나가 기억이 났다.

 

"영화 늑대소년이요? 완전 여자들 눈물 제조기래요. 그래서 전 펑펑 울까봐 일부러 안보고 있어요."

 

난 이 말뜻을 공감하기까지 늑대시간의 러닝타임만큼이나 긴 시간이 흘러야만 했다. 필자도 어느 정도 소녀감성(...)을 지녔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애쓰고 있었기 때문에..

 

늑대소년, 내 생애 손에 꼽을 최고의 영화

 

 

<이 장면을 보면서 짧은 희비가 교차했다>

 

송중기는 순수했다. 아니, 철수는 순수했다. 박보영도.. 순이도 순수했다. 과거 시점으로 돌아가면서 한적한 시골에서 보여주는 모습에 평온한 곳에서 시작하는 영화 늑대소년은 극중 캐릭터를 조목조목 잘 짚어주고 있었다. 순수한 배움, 진실된 나눔, 애틋한 감정 그리고 사랑.. 그로 인해 더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을까?

 

신기한 점은,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그리는 멜로영화에서 그 흔하디 흔한 키스신 조차 없다. 애로애락하지도 않았다. 키스신 등을 통해 둘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보다 더 애틋한 장면들이 많았기 때문에 키스신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스토리상 키스신이 들어갔다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지만..

 

올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필자에게 늑대소년이라는 영화는 몇 년이 지나도 계속 생각날 것이다. 그만큼 감동을 주고, 좋아하는 배우들이 열연을 펼쳤고(사실 이건 중요하지 않다), 추운 겨울 얼어붙은 감성을 자극한 따뜻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