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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한잔,생각 한모금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정말 되고 싶다면?

   '시간을 지배하는 자'가 되는 방법 

    - 뚱상인의 책 리뷰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빵의 주성분이 탄수화물입니다. 탄수화물은 단백질, 지방과 함께 3대 영양소로, 두뇌 작용, 심장 박동, 혈액 순환 등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활발히 해줍니다. 그렇기는 하나, 과다 섭취하면 좋지 않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솥 정(鼎)’자 에피소드처럼, 3대 영양소는 세 가지 영양소가 골고루 균형을 이룰 때 제 기능을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빵만으로 살면, 즉 탄수화물만으로 살면, 체내 피하지방이 증가하고 비알콜성 지방간이 발생하며 노화가 촉진됩니다. 그래서 의학계에선 40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생계를 위한 경제활동은 흔히 ‘밥벌이’로 비유되곤 합니다. 여기서의 밥과, 앞서 언급한 빵은 같습니다. 밥 대신 빵을 집어넣어도 무관합니다. 빵벌이. 밥과 빵은, 다들 아시다시피 ‘돈’에 대한 제유(提喩)입니다. 돈벌이. 


빵만으로는, 밥만으로는, 탄수화물만으로는, 돈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게 살면, 체내 피하지방과 비알콜성 지방간과 함께 순식간에 노화될지도 모릅니다. 몸의 노화뿐만 아니라, 정신의 노화까지. 몸은 늙는 것으로 그치지만, 정신은 늙는 데다가 낡기까지 합니다. 늙고 낡은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탄수화물에 너무 매달리지 말아야겠습니다. 


여기, 한 선지자(visionaries)가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창조적인 자기 시간 갖기에 성공한 인물. 탄수화물과 함께 ‘창조적 시간’이라는 비타민을 꾸준히 섭취한 영양사. 혹시 회사 생활을 하며 ‘나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본 분이라면, 지금부터 소개해드릴 선지자의 삶을 통해, 다시금 ‘해볼 만하다’는 굳건함을 되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시간을 지배했던 자, 그의 이름은 류비셰프 / 출처: lib.aldebaran.ru





|평생 170권의 저서 남긴 직장인, 류비셰프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셰프.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소설에 등장할 법한 이름입니다. 퍼뜩 짐작하셨겠지만, 러시아인의 이름입니다. 1890년 상트 페테르부르그에서 태어나 1972년 82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대학교에서는 ‘물리-재료학’이라는 과목을 전공했고, 졸업 후 농촌 곤충학 연구원, 생물연구소 생태부장, 교육대학 동물학부장 등을 지냈습니다. 그의 평전인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를 인용하면, “매일 8시간 이상을 자고 운동과 산책을 한가로이 즐겼으며 한 해 평균 60여 차례의 공연과 전시를 관람했던 사람. 보통 남자들이 그렇듯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직장에 다녔고, 동료와 후배들에게 애정 어린 편지를 즐겨 쓰던 사람”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특별할 게 없습니다. 그저, 학자의 삶을 충실히 살았다, 라고 정리할 수 있을 정도. 류비셰프의 바이오그래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의 사후에 속속 드러납니다. 학술서적 70권과 연구논문 1만2,500여 장(단행본 100권 분량). 류비셰프가 생전에 남긴 것들입니다. 쉽게 말해, 82년의 생애 동안 류비셰프는 170권의 책을 쓴 셈입니다. 그가 다루었던 분야 또한 방대합니다. 자신의 전공 영역인 물리학과 생물학을 비롯하여 철학, 역사, 문학, 윤리학 등을 두루 섭렵했습니다. 과학자이면서 인문학자이기도 했던 것이죠. “인문학과 결혼한 테크놀로지(Technology married with Liberal Arts)”라는 스티브 잡스의 에피그램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다시, 앞서 인용했던 책의 내용을 복기해보겠습니다. 매일 8시간 이상 취침, 매일 운동과 산책, 연간 60여 회 공연 및 전시 관람, 꾸준한 직장생활(류비셰프는 65세에 은퇴했습니다), ……. 이쯤에서, 속 좁은 일개 회사원―필자―은 시큰둥해집니다. ‘8시간이나 잤다고? 매일 운동하고 산책할 시간이 있었다고? 회사 일이 널널했나 보지?’ 그래서 류비셰프는 과연 하루에 몇 시간 동안 일했는지를 찾아봤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하루에 14~15시간을 일한다고 말하곤 한다. 어쩌면 진짜로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그렇게 많은 시간을 일한 적은 없다. 하루 동안에 가장 많이 일한 최고 기록이 11시간 30분이다. 보통 나는 하루에 7~8시간만 연구해도 큰 만족을 느낀다. (…) 물론 사람은 잠을 자야 하고 먹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있다. 이러한 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약 12~13시간이 남는다. 바로 이것이 일을 하거나 학문을 연구하거나 인생을 즐기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다. 

_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중 (이하 인용문 출처 동일)


요약하면, 류비셰프는 일평균 7~8시간 동안 일한 것입니다. 이 같은 업무량은, 9시 출근 18시 퇴근(야근이 없을 경우)이 일반적인 우리나라 직장인들과 비교하면 1~2시간 적은 양입니다. 류비셰프가 우리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그건 고작해야 한두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타이핑 중인 류비셰프 / 출처: Diary.ru




|시간을 지배했던 자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서, 출연자인 하하(하동훈) 씨가 일명 ‘시간을 지배하는 자’라는 캐릭터로 등장한 적이 있었죠. 류비셰프가 <런닝맨>을 본다면 “허허” 너털웃음을 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실제로 ‘시간을 지배했던 자’였으니까요. 


류비셰프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간 통계방법을 고안하여 자기 삶에 적용시켰습니다. 철저히.(50년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시간 기록은 연간, 월간, 주간, 일간, 시, 분 단위로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일기 역시 시간과 주요 사건만 짤막히 적어놓은 형태입니다. 요컨대 류비셰프는, 인생을 시간이라는 프레임으로 쪼개 활용할 줄 알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소스노코르스크 시(市) 방문 - 0.5 

기본 과학 연구 : 도서 색인 - 15분, 도브잔스키 저서 읽기 - 1시간 15분

곤충분류학 : 견학 - 2시간 30분, 두 개의 그물 설치 - 20분, 곤충 분석 - 1시간 55분

휴식(처음으로 우흐타 마을에서 수영을 함)

이즈베스티야 지(誌) - 20분

의학신문 - 15분 

호프만의 소설 <황금단지> - 1시간 30분

안드론에게 편지 - 15분


총계 - 6시간 15분


_1965년 어느 여름 날


류비셰프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날(1942년 6월 22일)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시간을 기록해놓았습니다.(심지어 전쟁 기간 중 두 아들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조차, 엄격히 ‘객관적’으로 기술했다고 합니다.)


1941년 6월 22일, 키예프. 

독일과의 전쟁 첫날. 13시경에 소식을 들음…….


1941년 6월 23일. 

거의 온종일 공습경보. 생화학연구소 회의. 야간 당직. 


1941년 6월 29일, 키예프.

동물학 연구소에서 9시부터 18시까지 당직. 계산도표학 공부. 

그에 대한 보고서 작성. 저녁 당직…….


류비셰프라는 남자는 감정이 결여된 니힐리스트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하지만 그는 지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속내를 표현하곤 했습니다. 그 표현의 방식 자체도 매우 절제된 것이었으나, 오히려 그러한 절제 속에서 그가 감당해야 했을 생의 무게가 더욱 처절히 묻어납니다. 다음 인용문은 류비셰프가 자식 잃음과 이혼 후 정서적으로 혼란을 겪다가 재혼과 함께 안정을 되찾고 지인에게 보낸 편지 내용입니다. 


……가정만이 줄 수 있는 안락함이 과거의 삶을 저버리게 만들고 있다네. 오랜 친구인 자네에게 고백하네만 나는 심지어 학문적인 관심까지도 급격히 잃게 되었지. 그렇다고 나를 비난하지는 말아주게. 과거에도 많은 잘못을 용서해준 자네이니 이번에도 그렇게 넘어가주게나. 


두 아들의 죽음, 이혼 외에도 류비셰프의 인생에는 좌초들이 많았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더없이 그답게 자신의 ‘불운 목록’을 기록해두기도 했습니다. 


1918년에 폐결핵에 걸림

1920년에 폐렴을 앓음

1922년에 발진티푸스에 걸림

1925년에 극심한 신경 쇠약에 시달림

1930년에 이념 논쟁에 휘말려 체포 위기를 겪음

1937년에 레닌그라드에서 박사 학위를 박탈당할 뻔함

1939년에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잘못하여 중이염에 걸림

1946년에 비행기 사고를 당함

1964년에 얼음판에 넘어져 뒤통수를 심하게 부딪침

1970년에 다리가 부러짐…….



 

나는 시간을 지배하는 자인가, 시간에게 지배 당하는 자인가



|시간에 지지 않는 삶


류비셰프가 기록해둔 ‘불운 목록’은, 그가 전 생애에 걸쳐 ‘시간’이라는 적과 사투를 벌였음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삶을 분 단위로까지 구조화하여 삶의 본질로 육박해 들어가고자 했던 것이죠. 그 의지야말로, 물리학, 생물학, 철학, 역사, 문학, 윤리학 등 다양한 학문들을 경계 없이 드나들 수 있게 해준 힘이었을 겁니다. 자기 손 안의 시간이 무가치하게 빠져나가는 것을 결코 허하지 않았던 억센 악력. 시간을 쥔 악력은 곧, 자기 삶에 대한 장악력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하는 순간, 시간에게 지는 것입니다. 탄수화물이든 단백질이든 지방이든, 인생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마법의 영양과 영향을 고루 섭취하려면, 불가피하게 시간과 싸워야만 합니다. 다들 시간 지배자, 시간 정복자가 되시기를. 류비셰프처럼.